오피니언 사설

한눈팔면 뒤처지는데…폐기 위기 몰린 ‘AI 기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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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월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인공지능(AI)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FP]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월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엔비디아 GTC 인공지능(AI)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FP]

‘AI 전쟁’ 주도권 잡으려 각국 입법 및 지원 잰걸음

가이드라인 마련돼야 기업의 혁신적 시도 가능해

시가총액 2조 달러(약 2724조원)는 기업에는 꿈의 고지다. 이 고지를 밟고 ‘2조 달러 클럽’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전 세계에 5개뿐이다. 애플과 아람코,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구글(알파벳)이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엔비디아다. 인공지능(AI) 열풍 속 주가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지난 2월 반도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AI 반도체의 선두주자로 전 세계 AI 칩의 80%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다. SK하이닉스가 1분기 ‘깜짝 실적’을 낸 것도 엔비디아의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단독 공급한 덕이다.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미래 신사업을 찾는 각국에 AI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주요국이 잰걸음을 하는 이유다. 미국은 2020년 ‘국가 AI 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하고, 2022년에만 AI 분야에 17억 달러를 투입했다. 지난해에는 AI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 빅테크의 거대언어모델(LLM) 등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내용 등을 담은 ‘EU AI법’을 통과시켰다. 글로벌 AI 산업에서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일본도 이달 중 ‘AI 전략회의’에서 법적 규제를 제안할 계획이다.

전 세계가 AI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답답하게도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정쟁에 몰두한 국회의 직무유기로 산업의 기본 틀이 될 법안조차 만들지 못해서다. 21대 국회 임기를 20여 일 남겨둔 상태에서 ‘AI 기본법’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자동 폐기의 기로에 놓여 있다.

AI 산업이 규제의 진공 상태에 빠지며 기업은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다. 데이터 학습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각종 부작용과 무분별한 활용이 가져올 위험 등 AI의 태생적 한계를 고려하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신속히 만들어져야 기업이 혁신적인 시도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과 제도적인 기본 틀을 갖추지 못하면, 기업은 소송 등에 휘말릴 수 있고 딥페이크나 사기 등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문제를 처리하는 데도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치열한 AI 전쟁에서 한눈팔면 바로 뒤처진다. 애플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애플이 AI 혁명을 외면한 채 AI 생태계에서 소외되며 최근의 매출과 주가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혁신에 따른 새로운 산업으로 가능하다. 더는 입법과 규제 공백이 산업 성장을 가로막아서는 안 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