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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민우의 시시각각

믿을 건 '찐윤'이 아니라 국민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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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장

2월 초 윤석열 대통령의 KBS 대담 당시 이슈는 디올백 논란이었다. 윤 대통령은 사과가 아닌, “아쉽다”로 이를 비켜갔다. 반면에 9일 열리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의 쟁점은 채 상병 특검법이다. 3개월 전 대담이 총선 민심을 다독이는 차원이었다면, 이번엔 국민 여론뿐 아니라 거부권ㆍ재의결이라는 실체적 과정도 직면해 있는 상태다. 윤 대통령으로선 더욱 엄중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어린이날 초청 행사에 참석해 10남매를 키우는 박성용, 이계정 씨 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어린이날 초청 행사에 참석해 10남매를 키우는 박성용, 이계정 씨 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련 질문이 나오면 윤 대통령은 순직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면서 특검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채 상병 사건은 경찰에서 수해 현장 대처 미흡(업무상 과실치사)을, 공수처에서 외압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그 결과를 보고 특검 도입을 판단해도 늦지 않다. 민주당이 주도해 만든 공수처를 믿지 못해 무조건 특검부터 하자는 건, 진상 규명이 아니라 정쟁을 하자는 거 아닌가. 특검 추천권을 민주당만 갖겠다는 것은 억지다. 여야가 합의하거나 대한변협 등 제3자가 추천하는 게 상식이다. 사실상 민주당이 특검을 지명하는 건 ‘민주당 특검청’을 만들겠다는 의도 아닌가. 특검이 수시로 언론 브리핑을 하는 것도 악용 우려가 있다.수사 외압은 악의적 프레임이다. 군은 사망 사건 자체를 수사할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군사법원법을 개정해 사망ㆍ성범죄 등의 경우, 지체 없이 민간에 이첩하게 했다. 오히려 초동 조사만 해야 할 박정훈 수사단장이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을 과실치사로 단정 지은 것이 월권이다.

9일 기자회견 이슈는 채 상병 특검
거부권에도 막아내기 버거운 상황
"국민이 불러냈다"는 초심 새길 때

법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이렇게 쏘아붙이면 지지층은 속 시원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언어는 공소장이 아니다. 대통령 공격을 반박할 민주당 논거도 적지 않다. 양측의 지루한 공방만 계속될 게 뻔하다. 대통령은 사태를 해결하고 종지부를 찍어야지, 논박을 이어가면 이득 볼 게 없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3월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이첩 관련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정훈 전 수사단장(대령)이 3월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리는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돌이켜보면 채 상병 사건은 이렇게 커질 사안이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처럼 정권 핵심부가 죽음을 방치하거나,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거나, 월북몰이를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VIP 격노’라며 야당은 사태를 부풀리고 있지만, 사고 책임을 사단장에게까지 묻는 것은 상당수 국민도 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순리대로 풀었어야 했다. 하지만 박정훈 대령을 ‘항명 수괴’로 몰아세우고,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대사로 보내면서 사태를 키웠다.

더 냉정한 현실은 윤 대통령이 과연 특검을 막을 수 있느냐다. 거부권을 행사해도 과거처럼 부결된다는 보장이 없어서다. 민주당은 28일 재의결을 벼르고 있다. 현재 국민의힘 113명 의원 중 이번 총선에 낙천ㆍ낙선한 이는 58명이다. 이들이 과연 특검에 반대할까. 아니 본회의장에 오긴 올까. 게다가 재의결은 무기명 투표다. 15명만 이탈해도 가결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설사 가까스로 이번에 특검을 막는다 한들, 민주당은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또 올릴 게 뻔하다. ‘김건희 특검법’과 함께 말이다. 특검 방탄에 날이 샐 공산이 크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조국 수사, 울산 수사, 원전 수사를 연이어 가동한 건 2020년이었다. 총선 압승으로 민주당 권력이 최정점을 찍던 때였다.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이 탄생했고, 실제로 그들은 무슨 짓이든 했다. 그런 폭압에 맞서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윤석열 개인의 소신도 컸겠지만 그를 지지하는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지금 윤 대통령이 의지해야 할 것은 민정수석이 아니다. ‘찐윤’도 아니고 숫자도 아니다. 원칙을 지키면 국민이 도와줄 것이란 믿음이다. “채 상병 특검법은 불합리한 요소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하겠다. 국민이 원하면 따르겠다. 특검 문제로 더 이상 국정이 멈춰선 안 된다. 국정 최고책임자로 국민만 바라보고 나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