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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문재인 그리고 김영한, 조대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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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다들 알다시피 앞서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가 16개월 만에 되살린 건 DJ(김대중)였다. 당시엔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12년 후 발간한 자서전엔 생각을 담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신설했다. 여론 수렴을 강화하란 재야 및 시민단체의 건의를 수용했다. 민정수석에 김성재 한신대 교수를 임명했다. 김 수석에게 당부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상의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

 딱 다섯 문장이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짧은 설명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막강한 민정수석이란 자리와 대비된다. DJ는 부인이 거명된 옷 로비 의혹 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정국을 다잡고 싶어 했다. 처음엔 학자를 기용했지만 이내 검찰 출신으로 바꾸었다. 업무 범위도 민정(民情·백성들의 사정과 형편)에다 사정(司正)을 더했다.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민정수석의 공간, 이전보다 줄어
쓴소리 해도 신뢰 거두지 말아야
대통령 의지 관철 통로로는 한계

 어떤 자리이기에 싶을 것이다.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모든 권력기관 위에 있다.” 한 민정수석 출신의 말이다. 그래선지 MB(이명박) 정부 시절 여권 중진은 신임 민정수석(권재진)에게 이런 조언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통령 말만 들어선 안 된다. 문재인이 사람 좋다 어쩐다 하지만 결국 노무현 대통령의 불행한 말로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

 김성재 이래 7일 임명된 김주현까지 민정수석은 26명에 불과하다. 배타적 세계다. 이들 중 3명 정도만 직·간접적으로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가려져 있기도 하다.

 우선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그는 자서전(『운명』)에서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나 검찰·국가정보원·국세청·감사원 개혁은 물론이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와 용산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방폐장 건설, 노동문제까지도 주도했다고 썼다. 대선자금 수사나 측근 비리(나라종금) 사건을 관리했고, 한·미·대북 관계 등 외교안보 문제도 중재했다고 한다. 그는 대통령 인사권을 언급할 때도 ‘우리’라고 했다. “우리는 첫 국방장관으로 준비된 카드가 없었다”고 말이다. 실로 ‘왕수석’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한 김주현 전 법무부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에서 민정수석비서관에 임명한 김주현 전 법무부차관을 소개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반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두 수석의 기록은 처연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김영한의 업무일지다.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120쪽 분량인데, ‘영(領, 박 전 대통령)’과 ‘장(長,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의 지시에 어떻게 짓눌렸는지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7월엔가 이렇게 적혀 있다. ‘領·죽음에 대하여 관대한 전통. 동정론/ 음모론. 사기·조작론/ 지연책임론/ 오로지 fact, 신뢰성을 얻는 것이 중요/ 수사 方向(방향) comment (검찰)-후속 조치/ (중략)/ 성범죄자 身上情報(신상정보) 확인-잘한 일. 弘報(홍보)되도록/ X 휴가철 犯罪(범죄) 유관부처 협조-대처’.

 마지막 수석인 조대환은 “(출근) 1주일 만에 혈압약을 다시 복용했다”고 할 만큼 격무였지만, 정작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건에 대해선 사전협의조차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남듬길』). 스스로 ‘앉은뱅이 용틀임’이라고 했다.

 셋을 가른 건, 결국 대통령과의 관계였다. 대통령이 어디까지 용인하느냐였다. 대통령이 신임을 거두면 아무리 내로라하던 인사(최재경·신현수)도 몇 달 못 가곤 했다. 분명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민정수석에 앉혀야 하지만 민정수석에 앉혔다면 어떻든 계속 신뢰해야 했다.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게 해야 했다. 그게 직(職)의 본질이어서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은 민정수석의 관점에서 보면 썩 좋은 보스는 아니다. 국정농단 수사를 통해 민정수석의 공간을 확 줄이는 바람에 훨씬 고난도가 됐는데, 할 수 있는 일도 제한적이 됐다. 윤 대통령은 게다가 불편한 소리를 하면 “내 편 안 든다”고 서운해 한다고 소문나 있다. 과거와 같이 ‘활약’을 하기에 가혹한 조건이다. 그나마 민심의 통로로는 쓸 만할 테지만, 대통령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으론 턱없이 미흡할 것이다. 그런데도 기대한다? 험로에 들어선 윤 대통령에겐 사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