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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두 해법의 ‘추가 타협안’ 모색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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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국회 연금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한 최종 설문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에 참여한 492명의 시민대표단 가운데 절반을 넘은 56.0%는 ‘소득보장안’을 지지했고, 43%는 ‘재정안정화안’을 지지했다.

재정 안정화안은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을 현재의 스케줄대로 2028년까지 40%로 낮추되 보험료율은 9%에서 12%로 인상해 국민연금의 적자 규모를 줄이는 방안이다. 반면 소득보장안은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재정안정화안보다 1%포인트 더 올리지만,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인상해 연금액을 25% 높이는 안이다.

이번에 수렴된 보험료율 12%에
올해 수준 소득대체율 42% 반영
21대 국회가 개혁 마무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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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보장안대로 하면 2061년 기금 고갈 이후에는 최고 43.2%까지 보험료율을 올려 수입을 늘려야만 국가가 약속한 연금을 줄 수 있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민연금 지출도 12%가 된다. 이에 기초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 그리고 퇴직연금까지 더하면 GDP 대비 연금 지출이 20%에 육박한다. GDP 대비 15%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 연금 지출 때문에 국가재정이 엉망이 된 이탈리아나 그리스보다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소득보장 강화안이 개혁안으로 국회 공론화위에 상정된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받는 이유다.

그러나 소득보장안을 제시한 야당 측 위원들은 물론이고 소득보장안을 지지한 시민대표들도 모두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것은 다행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을 보면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평균 42.5%로 한국과 유사하다. 하지만, 평균 보험료율은 18.2%로 한국(9%)의 두 배를 넘는다. 공론화위에 제시된 대로 12%나 13%로 올려도 OECD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그렇지만 1998년 이후 26년간 동결한 보험료율 인상이 가능해져 천만다행이다.

지금 2200만명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낸다. 이들의 은퇴 후엔 납부자가 1200만명 선으로 줄어든다. 2200만명이 은퇴하면 인구가 반 토막 난 후세대가 보험료 인상 압박을 2배 받게 된다. 당장 보험료 수입을 늘려 미적립 부채 규모를 줄이면서 기금을 더 확충해 기금수익을 최대한 창출해 내야 한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은 연평균 5.92%다. 현재 쌓여있는 연기금 1049조원의 56%인 589조원이 운용 수익금이다. 밑천을 두둑이 만들고 운용 수익 규모를 늘리면 후세대의 보험료 인상 압력을 상당히 낮출 수 있다.

소득보장안대로 소득대체율을 OECD 평균도 훌쩍 넘는 50%까지 인상하면, 보험료율을 13%로 올려도 적자 규모만 더 키운다. 따라서 이번에 합의된 사항이라 할 수 있는 보험료율 12%에 소득보장에 대한 바람을 반영해 소득대체율을 올해 수준(42%)에서 동결하는 타협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2%)을 희망한다.

물론 타협안으로 재정안정을 이룰 수는 없다. 사실 재정안정화안도 미봉책이긴 마찬가지다. 이 안으로도 기금 고갈을 막을 수 없으며, 이후에는 최대 35%까지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악을 피하고 구조 개혁을 위한 시간을 벌어준다는 데 의의가 크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후세대의 보험료 납부금만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현행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 적립형 연금만이 살길이다. 국가가 후세대에만 의존하지 말고, 미래 연금 지출 소요액만큼 기금을 축적해 놔야 한다. 한국엔 적립형 의무연금으로 퇴직연금이 있다. 실상은 퇴직금처럼 쓰이지만, 연금화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연금도 적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기금이 지속될 수 있도록, 그래서 수익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사전적 보험료 인상이 절실하다. 기금 고갈 이후에는 운용수익금을 기대할 수 없기에 보험료의 과도한 인상과 항구적 국고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를 피하는 연금개혁의 첫걸음을 21대 국회가 내디뎌야 한다.

정쟁으로 점철된 21대 국회이지만, 여·야 합의로 2022년 연금개혁특위를 출범시켜 공론화까지 마쳤다. 이제 숫자 조율만 남았다. 임기 종료를 한 달 앞둔 21대 국회가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결자해지하길 바란다. 지금이 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이자, 박수받고 떠날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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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