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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줄 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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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태화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지난달 30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학교의 상징 해밀턴홀을 점거하던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대 100여 명이 교내에 진입한 경찰에 체포됐다. 그리고 줄줄이 손이 뒤로 묶인 채 한참동안 ‘본보기’처럼 서 있다가 호송 버스에 올랐다.

하늘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많은 시민들은 빗속에서도 “부끄러운 줄 알라(shame on you)”는 구호를 외쳤다. 경찰의 표정도 어두웠다. 현장에서 만난 중년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컬럼비아대 교수였다. 그는 “평생 자유를 가르쳤는데 너무 참담하다”고 했다. “이건 내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는 다음날 다른 교수들과 함께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했다.

지난달 30일 컬럼비아대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학교로 진입한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컬럼비아대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학교로 진입한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수정헌법 1조엔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중년의 교수가 가르쳐 왔다는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한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학교측이 시위자에 대한 퇴학 방침을 밝히자 학생들은 얼굴을 가렸고, “신원이 드러나면 졸업할 수 없게 된다”며 입까지 닫았다.

어렵게 성사된 인터뷰 도중엔 전통 의상을 입은 유대인 학생들이 몰려와 채증(採證)하듯 셔터를 눌러댔다. 국회의원의 입을 강제로 틀어 막고 사지를 들어 끌어내는 장면은 없었지만, 이를 보고 있자니 ‘입틀막’ 논란이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반복했다. 경계 대상으론 ‘반(反)지성주의’를 들었다. 공정을 내세우며 출범한 정부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소통과 지성을 갖춘 토론이 이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2주 연속 20%대였다. 부정 평가의 이유는 경제·민생·물가(21%) 문제와 함께 소통 미흡(15%), 독단적·일방적(9%) 등 대통령의 태도와 관련된 요인이 상위권에 들었다. 이 상태라면 역대 대통령의 취임 2주년 지지율 가운데 최저 기록이 된다.

외부의 평가는 더 가혹하다. 지난 3일 공개된 국경없는기자회(RSF)의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62위를 기록했다. 지난 정부 때 순위는 내내 40위권 초반이었다. 이번 순위는 전쟁으로 자유가 제약될 수밖에 없는 우크라이나(61위)보다 낮다.

미국에선 그래도 학생들과 시민들이 공권력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외쳤다. 한국의 정치도 최소한 부끄러운 줄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