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해밀톤 호텔' 잊었나…불법 증축 강제금 줄인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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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해밀톤 호텔 불법 증축 문제가 꼽힌다. 그런데도 국회가 불법 증축 건축물에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을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킨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22년 10월 31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이 통제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22년 10월 31일 오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옆 골목이 통제되고 있다. 중앙포토

국토교통부는 2일 불법 건축물에 대한 이행강제금의 감경 비율을 최대 50%에서 75%로 확대하는 내용의 건축법 개정안 시행령을 입법예고 했다. 이는 2월 29일 국회가 같은 내용이 포함된 건축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따른 것이다.

이행강제금은 시정 명령을 내렸는데도 이행하지 않았을 때 지자체가 건축물 소유주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조치다. 벌금이나 과태료와 달리 위반 상태가 계속되면 강제금을 추가로 부담시킬 수 있어 행정의 실효를 높이는 주요 수단으로 쓰인다.

이행강제금 감경 비율을 늘리는 건축법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2022년 11월)과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2023년 3월)이 각각 대표 발의했다. “억울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이 법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와 법사위를 거쳐 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206명 가운데 찬성 196명, 반대 2명, 기권 8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위반건축물 현황.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검토보고서 캡쳐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전국위반건축물 현황.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검토보고서 캡쳐

이 개정안의 검토 및 심사 보고서에는 “위반 건축물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송병철 수석전문위원은 2023년 2월 보고서에 “10·29 이태원 참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현행 제도에도 불구하고 위반건축물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지자체도 감경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적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 위치한 해밀톤 호텔이 2019년 테라스 건축물을 무단 증축해 참사 당일 골목 혼잡도를 높였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국토위 소속 의원들은 지난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총 3차례의 법안심사소위에서 이 법안을 논의했다. “위반 건축물 확산에 따른 건축 안전성 저해 우려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박재유 수석전문위원), “제도의 실효성이나 강화된 안전관리 인식을 고려했을 때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김오진 전 국토부 1차관)는 우려가 이어졌으나, 국토위원들은 대체로 귀 기울이지 않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이 집중한 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었다. 의원들은 “누군가에게 귀책사유를 묻기 어려운 상황이 굉장히 많다”(심상정 정의당 의원)라거나 “위반 건축물인 줄 모르고 건물을 산 선의의 피해자들도 많다. 사정이 있는지 없는지 구별하는 것은 조례에 담자”(김정재 국민의힘 의원)고 말했다.

실거주 의무를 3년 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 등을 심사하기 위해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정재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실거주 의무를 3년 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 등을 심사하기 위해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정재 소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법안소위 심사를 마친 2월 21일에는 “다음번을 위해 구두로라도 85% 감경을 약속해놓자”(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등 추가 감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여야 의원들이 동의하면 차관님도 동의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김병욱 민주당 의원)는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관은 통화에서 “여야가 이태원 특별법을 통과시켜놓고 불법증축은 방치하고 있다”며 “해밀톤 호텔 대표도 시정 명령을 두 차례 받고 이행강제금까지 부과받았지만 시정하지 않고 있었다가 참사가 발생한 측면도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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