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관음(觀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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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관음(觀音)'-서정춘(1941~ )

어려서 배고파서

오이밭 주인에게

얻어맞은 귀싸대기

이제 와서 괜찮다고

허탕 치듯 사라져버린

슬픈 귀울음


귓속에서 누군가 울고 있습니다. 참 오래! 침이 고이고 눈에 삼삼했던 푸른 오이 냄새를 물씬물씬 풍기면서. 미궁 같은 귓바퀴가 소리의 출구를 봉해 버린 걸까요? 내뱉지 못했던 배고픔이 귓바퀴를 돌아 달팽이관 속으로 몰려 들어갑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네 탓이 아니라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오래오래 낙인처럼 피었던 붉디붉은 손꽃이 집니다. 배고픔이 집니다. 귀울음이 고여 있던 달팽이관에서부터 먹먹한 물음표 같은 귓바퀴 밖으로 관음(觀音)의 자비 소리가 길을 내는 데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반괄호처럼 열린 제 왼쪽 귀가 얼얼합니다. 허, 참, 허탕 치듯 비어 있는 귀울음 소리를 오래 들여다보는 아침입니다.

<정끝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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