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다시 ‘찐윤’ 원내대표라니 국민의힘 제정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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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3월 20일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이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례대표 공천이 투명하지 못했다며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 20일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이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례대표 공천이 투명하지 못했다며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참패 책임 적잖은 이철규, 오히려 중용설

민심보다 윤심 중시한 오만으론 쇄신은 불가능

국민의힘 차기 원내대표에 친윤계 핵심인 이철규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된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오는 9일 새 원내대표를 선출할 예정인데, 이 의원을 제외하면 마땅한 다른 도전자도 없는 모양이다. 이 의원만 단독 출마를 하면 경선 없이 원내대표에 추대된다. 국회의원 총선에서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 참패를 당한 정당치고는 너무나 한가한 풍경이라 가짜뉴스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이 의원은 세상이 다 아는 ‘찐윤’ 인사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친윤 그룹에서도 윤 대통령과 소원해진 사람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이 의원은 지금까지 여당에서 윤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활동한 최측근이다. 이런 인사가 원내대표가 된다는 것은 총선 민심에 귀를 막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대패를 당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때문이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이나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같은 문제들도 사실 사건 초기에 윤 대통령이 민심을 정확히 읽고 적절한 조처를 했더라면 지금처럼 커질 일이 아니었다. 그 고비마다 친윤 일색이었던 국민의힘 지도부는 용산 눈치만 보다가 민심 이반을 자초했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이 ‘찐윤’ 원내대표를 뽑는다는 건 여전히 ‘민심’보다 ‘윤심’을 더 중시하겠다는 오만이 아니면 뭔가. 이래서야 어떻게 당의 혁신을 기대하겠는가. 벌써 친윤 그룹이 이 의원을 미는 건 특검법 부결 표 단속 때문이란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이 의원은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무리한 공천을 주도하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전력이 있다. 그랬다가 다시 이번 총선에서 당 인재영입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을 맡아 선거에 깊숙이 관여했다. 당연히 총선 참패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다. 심지어 이 의원은 선거전이 한창인 와중에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난하는 저격 회견을 열어 당 내분까지 일으켰다. 자숙한다고 해도 모자랄 판인데 원내대표라니 정말 해도 너무한다는 탄식이 안 나올 수 없다.

가뜩이나 국민의힘 새 비대위원장에 황우여(77)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명된 것도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는 마당이다. 6월 전당대회 때까지만 맡는 임시직이라고 하지만 8년 전에 정계를 떠난 인사를 당의 얼굴로 세우면 어쩌자는 것인가. 비대위원장에 거론됐던 당내 중진들은 죄다 고사했다고 한다. 실권도 없는데 궂은일은 떠맡기 싫다는 속내였을 것이다. 당이 수도권에서 소멸할 위기를 맞았는데도 지금 국민의힘에선 혁신 의지도, 희생정신도 찾기가 어렵다. 아마 국민의힘은 지금이 바닥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