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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없이 상생했다…'연구∙실용∙평행학습' 역할 나눈 美대학 [캠퍼스 학과 빅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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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홈페이지

사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홈페이지

시대 변화에 따른 ‘학과 생태계’의 재편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학의 특색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대학의 역할이나 교육 철학을 특성화한 외국 대학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성화가 살길”…기능 나눈 캘리포니아 대학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대학의 기능을 명확하게 분담한 사례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주는 1960년대부터 고등교육 시스템을 세 가지 유형으로 정비했다. 주 예산으로 운영되는 대학들이 역할과 전공의 조정 없이 경쟁하는 상태를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박사 이상 수준의 교육·연구에 집중하는 연구중심대학(UC) ▶석사와 학부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현장 실무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중심대학(CSU) ▶지역사회 주민 재교육·평생학습을 제공하는 지역사회 대학(CCC) 체계로 구분된다.

각 대학의 주력 학과와 임무도 다르게 구성됐다. UC체제의 대학들은 산업지식과 응용연구 등에서 역할을 담당하면서 항공·컴퓨터·생명공학 등 각 대학이 특화한 전공이 주를 이룬다. ‘캘리포니아 경제 엔진’으로 불리는 CSU는 실용학문을 중심으로 주로 비즈니스·교육·건강 등 분야에서 일할 인력을 양성한다. CCC는 2년 과정으로 직업교육과 사회체육 과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유현숙 전 한국교육개발원(KEDI) 선임연구위원은 “특성화가 대학의 살길이라는 것은 확실하다”며 “한국이 대학을 바라보는 정서상 대학의 기능을 분담하기가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고 했다. 예컨대 연구중심 대학으로 지정되면 좋은 학교, 그렇지 않으면 수준이 떨어지는 학교로 인식하는 등 각 대학을 기능이 아닌 ‘서열’로 인식한다는 의미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도 “한국은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대학 유형이 세분돼 있지 않은 고등 교육 구조”라고 봤다.

지난해 12월 대구의 한 대학도서관. 뉴스1

지난해 12월 대구의 한 대학도서관. 뉴스1

‘파격’ 통폐합·융합한 대학, 연구비 늘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는 전폭적인 학과 통폐합을 단행하면서도 특성화 분야의 역량을 키운 경우다.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년간 69개 학과를 없애고 30개의 새로운 융합 학과와 대학을 만들었다. 마이클 크로 ASU 총장은 그의 저서에 “학과 간 융합이 원활하게 일어날 수 있는 학문 플랫폼을 재구성했다”고 썼다. 이 기간 ASU의 전체 연구비는 2002년 1억1000만 달러에서 2017년 5억5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대학 연구비를 지원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전공의 벽을 허무는 연구를 장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은 미국 대학들보다 더 세부적으로 전공별로 칸막이를 치면서 ‘백화점식’ 구조가 됐다”며 “오히려 본 전공을 둔 채로 진로에 따라 타 전공 수업과 교수를 다양하게 접할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학과 통합이 진행되는 게 학생 입장에서 좋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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