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초학문 줄고 이 학과 늘었다…알수없는 '떴다방 학과'도 등장 [캠퍼스 학과 빅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AI가 대체한 언어 학과들에 대해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챗GPT 제공

AI가 대체한 언어 학과들에 대해 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챗GPT 제공

한국외국어대는 지난해 ‘AI(인공지능) 융합대학’을 신설하고 2024학년도 입시에서 신입생 198명을 모집했다. 융합대학 내 4개 학부 중 대표 격인 ‘Language & AI 융합학부’는 정시모집에서 18.5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강의 내용은 언어학개론과 함께 컴퓨터프로그래밍, 기초수학, 인공지능개론, 음향모델까지 어학과 공학을 넘나든다. Culture&Technology융합대학·기후변화융합학부 등도 신설됐다.

동시에 글로벌캠퍼스(용인)의 영어·중국어·일본어·태국어 통번역학과 등 12개 학과는 2024학년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올해는 서울·글로벌캠퍼스에서 전체 모집정원 3205명 중 800여명을 무전공으로 확보해 학과, 전공의 벽을 더 허문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2022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구조조정은 서울과 용인캠퍼스의 학문 중복 문제를 해소하고 첨단, 신산업 분야 학부를 신설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본진’ 격인 어학 분야를 정리하고 첨단분야의 지분을 늘린 한국외대의 변신은 최근 대학가에서 진행되는 학과 빅뱅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통계의 2008~2023년 일반대학 학과 추이를 분석에서도 인문·교육·사회·자연·예체능 계열 모집정원이 줄어드는 동안 공학·의약계열은 모집 정원이 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학은 8만6317명에서 8만7332명으로, 의예 계열은 1만699명에서 2만6583명으로 증가했다.

학과별로는 응용소프트웨어공학과 관련 학과가 2008년 57개에서 202개로 3.5배로 늘었다. 모집정원은 1138명에서 5394명으로 4.7배가 됐다. 식품영양학(189개→306개), 기계공학(153개→258개), 응용공학(74개→151개) , 재활학(66개→133개)과 의료공학(33개→81개) 등도 관련 학과 증가 폭이 컸다. 대부분 이공, 의예계열이다.

학과 신설 잦은 지방대…“이름 봐도 뭐 하는 곳인지 헷갈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학생 모집이 힘든 지방대는 학과 개설, 변경이 더 잦은 편이다. 대구대는 2024학년도 입시에서 보건의료정보학, 소방안전방재학, 응급구조학 등 보건계열 학과를 신설했다. 계명대는 지난해 실버스포츠복지학과를 만들었다. 동명대는 반려동물대학을 신설하고 애견미용-행동교정학과 신입생을 뽑았다.

여러 전공이나 학과를 통합·융합하는 방식으로 개설되는 신설학과가 많아지면서 ‘K-인터넷비지니스학과’ ‘미래라이프융합학부’ 등 여러 키워드를 조합한 학과명이 많아졌다. 교육계 일각에선 “뭘 배우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학과명이 복잡해졌다” “일부러 헷갈리게 작명해서 정보가 부족한 학생을 유치하려고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학과들…“특성화·벽 허물기가 답”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행정관 앞에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근조화환들이 세워져 있다.   건국대는 일부 학과 통폐합 및 입학정원을 축소해 전공 구분 없이 입학한 뒤 세부 전공을 택하는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19일 오전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행정관 앞에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근조화환들이 세워져 있다. 건국대는 일부 학과 통폐합 및 입학정원을 축소해 전공 구분 없이 입학한 뒤 세부 전공을 택하는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할 계획이다. 연합뉴스

최근 무전공 정원을 확대하려는 건국대는 정원 확보를 위해 글로벌비즈니스 학과와 융합인재학과 등을 폐과한다고 했다가 총학생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두 학과도 불과 몇 년 전 신설학과로 분류됐다. 글로벌비즈니스 학과는 2012년 대대적인 학사개편을 통해 만들어진 국제비즈니스대학이 원조이고, 융합인재학과는 2018년 융합학부 내 공공인재전공 등이 통합된 학과였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는 “경험으로 봤을 때 사회 트렌드를 반영한 신설학과는 처음에 반짝하더라도 곧 사라진다”며 “노동 시장에서 꾸준히 요구하는 전통적인 학문은 꾸준히 가져가되 도서관학과가 문헌정보학과, 데이터사이언스학과로 모습을 바꿨듯 트렌드를 받아들여 조금씩 변화하면 된다”고 했다. 또 신생 융합학과는 전통적인 학문과 연계한 일종의 ‘브랜치’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떴다방식’ 학과 개설이 이뤄지지 않으려면 신설 단계부터 특성화 전략을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현숙 전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은 “대학의 역할을 연구 중심, 교육 중심, 지역사회 기여 등 기능 중심으로 나누고 서로 겹치지 않도록 특성화를 강화하는 제3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과 단위의 개편뿐만 아니라 대학 전체의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함께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5년간 대학 정원은 1만5572명 줄어든 반면 학과 수는 1712개가 늘었다. 학생은 없는데 칸막이는 더 촘촘해진 셈이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수는 “대학이 급변하는 환경에 최적화하려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갈등도 많고 상당히 소요된다”며 “오히려 학생 선택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무전공 확대가 벽 허물기의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