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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포퓰리즘 시대의 기업 생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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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바야흐로 포퓰리즘의 시대다.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 주도의 22대 국회에선 그 흐름이 뚜렷해질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선 1주일 뒤 “국민 다수에게 필요한 정책을 하는 걸 누가 포퓰리즘이라 하냐”고 일갈했다. 그는 예전부터 포퓰리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이 국민이 맡긴 예산과 권한을 최대한 아껴서 표 얻으려고 좋은 정책 해주는 게 나쁜가? 좋은 포퓰리즘이다”고 했다.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18년 언론 인터뷰에선 “나는 포퓰리스트다. 국민을 대리하는 게 정치고, 이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게 포퓰리즘”이라고 했다. 2021년에도 친여 성향의 유튜브 방송에서 “포퓰리즘으로 비난받은 정책을 많이 성공시켜 인정받았다. 앞으로도 그냥 포퓰리즘을 하겠다”고 했다. “그래, 나 포퓰리스트 맞다, 어쩔래?” 하며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이에게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먹힐 리가 없다.

총선 후 ‘따뜻한 보수’ 목소리 커져
구체적 민생 정책 놓고 토론해야
외국 기업도 포퓰리즘 생존 투쟁

대통령과 여당은 떳떳한가. 이번 총선에서 보수가 가장 아파할 대목은 야당 못지않은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부었는데도 대패했다는 점이다. 연금개혁·노동개혁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고통을 감내하자고 호소했다면, 당장은 재정 여력이 없지만 미래와 청년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엔 쓰겠다고 했다면 비록 표에는 도움이 안 됐어도 ‘의미 있는 패배’로 기억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24차례 민생토론회는 재정으로 감당하기 힘든 정책 과제를 정부에 떠넘겼다. 무상교육 확대 등을 공약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으로부터 ‘우파 이재명’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십보백보였을 뿐이다. 가수 임재범의 노래 ‘너를 위해’ 가사를 빌려 표현하면 “매일 갚지도 못할 만큼 많은 빚을” 던지는 용산·여당의 “거친 약속”을 나라 곳간지기 기획재정부는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봐야 했다.

총선 후유증은 생각보다 크다. 득의양양한 진보와 반성하는 보수는 우리 사회를 어느 정도 좌클릭시킬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어제 신문 기고에서 “이제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따뜻한 우파’로 노선 전환을 할 때가 됐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의 현금 살포 포퓰리즘을 강하게 비판한 윤희숙 전 의원은 총선 민심을 현장에서 겪은 뒤 ‘지혜로운 포퓰리즘’을 얘기했다. “재정건전성을 어느 정도 허물어서라도 한계에 몰린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지원하자”는 주장이다.

누구나 민생 정책을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포퓰리즘 정책치고 민생으로 포장되지 않은 게 없다. 좋은 민생 정책과 포퓰리즘 정책을 가리는 일은 ‘지혜로운 포퓰리즘’과 ‘나라 망치는 포퓰리즘’을 구분하기만큼이나 어렵다. 적어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허물거나 위협하지는 않아야 포퓰리즘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보수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나 예산안에 사회 취약층 지원이 빠진 적은 없다. 언제나 발표 자료의 굵직한 기둥의 하나로 들어 있었다. 총선에서 완패한 윤 정부의 올해 경제정책 방향도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우파’도 좋고, ‘지혜로운 포퓰리즘’도 좋지만 이왕이면 구체적인 민생 정책을 제안해 토론했으면 한다. 지금 우리에게 따뜻하고 지혜로운 민생 정책은 무엇인가.

포퓰리즘 고민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어제 온라인에 ‘포퓰리스트 대처법: CEO 생존 가이드’라는 기사를 올렸기에 제목에 혹해 읽어 봤다. 무슨 뾰족한 방법은 없었다. 대처법은 컨설팅과 로비 정도였다. 뭘 알아야 날아오는 돌멩이를 피할 수 있으니. 차기 집권이 유력한 영국 노동당 주최 ‘기업인의 날’ 티켓이 하루 만에 다 팔렸다. “테이블에 앉지 않으면 당신 기업이 메뉴에 오를 수 있어서”란다. 경제가 정치와 선거에 휩쓸리는 폴리코노미(Policonomy)의 시대, 남들도 생존투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우리 기업인들에게 겨자씨만큼이라도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