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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채병건의 시선

국민의힘, 사라질 위기 알기나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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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Chief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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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면 10여년 후엔 ‘여의도 전설’이 만들어질 것 같다. 과거 보수 정당이 다수당이던 시절이 마치 전설처럼 전해질 때가 올 것 같다는 말이다.

22대 총선 결과를 따져보면 그렇다. 이번엔 개헌 저지선 100석을 겨우 넘겼지만, 국민의힘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론 100석도 위태롭다. 지금 대한민국의 구조적 위기는 저출산·고령화와 지방소멸이다. 그런데 이는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도 치명적이다. 22대 총선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보수 여당의 참패에 그치지 않고 보수 정당 참패를 고착화하는 한국 정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주 지지층 현 ‘60대 이상’ 줄어
인구감소 지역구도 국민의힘 다수
지역·세대 확장 절박감 안 보여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국민의힘의 미래를 예상해 보자. 지난 10일 총선 당일 방송 3사의 출구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60대 이상의 강력한 충성에 의지해 버텼다. 60대(국민의힘 62.9% 대 더불어민주당 34.1%), 70대 이상(72.7% 대 25.3%)은 압도적으로 국민의힘을 응원했다. 반면 20대부터 50대까지는 모조리 과반이 민주당을 지지했다. 10년 후엔 더 심각해진다. 이번 총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가 전체 선거인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1.9%다(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10년 후에 이들(즉 70대 이상)의 비율은 23.2%로 줄어든다(통계청 ‘인구로 보는 대한민국’ 추산). 반면 민주당 지지의 축인 현재의 4050 세대가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년 후에도 큰 변화가 없다. 이번엔 37.4%(중앙선관위)였는데, 2034년엔 35.3%(통계청 추산)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바뀌지 않는다. ‘진보 장년’은 시간이 지나면 ‘진보 노년’이 될 테니 10년 후 유권자 지형은 지금보다 더 민주당에 유리해져 있다. 또 이번 총선처럼 20·30세대가 40·50세대와 동조화하는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국민의힘은 생존 여부가 불투명하다.

인구소멸 역시 국민의힘에 위기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전국 인구감소지역 89개 시군구가 나와 있다. 연평균 인구증감률, 인구밀도, 청년 순이동률 등 8개의 인구감소지표를 종합해서 지정했다. 89곳 인구감소지역을 22대 총선의 정당별 당선 지역과 겹쳐 봤다. 인구감소지역이 지역구에 포함된 당선인은 국민의힘이 지역구 90명 중 27명으로 3분의 1에 육박한다. 민주당은 지역구 161명 중 16명이다. 당연한 결과다. 인구감소지역은 지방에 집중돼 있는데, 민주당은 수도권을 석권했으니 ‘인구소멸 지역구’ 위기는 대부분 국민의힘에 해당된다.

물론 국회가 인구감소에 맞춰 지역구를 자발적으로 통폐합할 리는 없다. 미루고 미룰 것이다. 그럼에도 인구소멸에 따른 지역구 의석수 감소의 위기는 국민의힘이 더 심각하다는 게 행정안전부의 인구감소지역 지도가 의도치 않게 담고 있는 추론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이 살기 위해선 선택지는 오직 확장밖에 없다. 수도권에서 생존하고, 2030을 뚫어야 한다. 지역 확장, 세대 확장 만이 살길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반성할 건 ‘대북 보수’를 전가의 보도로 삼으려는 나태함이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북한은 관심 밖 불량국가이다. 이들은 취업난과 고물가, 높은 거주비용에 대한 해법을 찾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이고, 대북 정책은 보수 정당의 기본 소양일 뿐 마법의 지팡이가 아니다. 당연히 젊은이를 끌어당길 한국판 ‘담대한 희망’을 찾아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고민이 없다.

다른 하나는 인식의 확장이다. 국민의힘은 집단적으로 동굴의 우상에 갇혀 있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비슷한 얘기를 하고, 비슷한 주장을 하니 나와는 다른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끼지 못한다. 이번에 수도권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낙선자의 얘기다. 선거운동 기간에 명함을 돌리기 위해 저녁마다 거리의 식당을 찾아다녔는데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가게마다 손님은 없고 주인 혼자 지키고 있으니 명함을 건넬 이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조 심판론’이 먹히기를 기대했다면 복권 당첨을 바란 것이다.

정당이 중요한 건 정당을 통해 지지층의 가치와 선택이 법과 제도로 현실화하기 때문이다. 또 당장은 모두가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론 나라를 이끌 리더도, 나라가 가야 할 비전도 결국 정당을 통해 만들어진다. 폐쇄적 정당에선 확장형 리더가 클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 시간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민주당의 편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절박함이 없다. 국민의힘이 보수의 미래를 고민하고 국민은 편안해야 하는데, 오히려 국민과 지지층이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의힘은 벌써 편안해 보인다. 국민과 국민의힘의 처지가 뒤바뀌었다는 게 개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