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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병훈의 마켓 나우

반도체 생태계가 양분되기 전에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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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이익을 지키려면 친구도 바꿔야 한다’이다.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두 갈래 분열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반도체 생태계를 지속해서 강화해가고 있다. 미국은 ‘자국 기업 중심으로 보조금을 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해외에서 유치한 기업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보조금 지급 정책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제 미국의 대중국 봉쇄가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남의 일처럼 관전할 여유가 사라졌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이 멈춰 선 것이 요즘 반도체 세계대전의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에서 심각성을 체감할 수 있다.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중국의 반도체 자급률이 높아지면, 우리나라 반도체 생태계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장비 수출이 지속해서 감소하는 것뿐 아니라, 저가 메모리나 반도체 완제품과 같은 우리나라의 주력 제품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측됐다. 기업들도 어느 정도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문제는 그다음 상황이다.

반도체 생태계가 심각한 수준으로 이원화된다면 반도체 완제품에 대한 통제도 강화되는 상황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다. 반도체 완제품이 통제 수단으로 사용되면, 반도체 소재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즉각적인 결과들이 발생한다.

반도체는 산업안보·국가안보와 직결된다. 반도체 완제품 중 우리나라 주요산업이나 국가안보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품목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한 다음, 유사시에 대비해 반도체 완제품을 비축해야 한다. 필수 기술인 경우에는 타산이 맞지 않아서 상용화를 못하더라도 소량 자체 생산체계를 확보해야 한다.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예를 들어 우주항공과 군사 분야에는 극한환경에서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는 특별한 반도체 기술이 필요한데, 공급망이 통제되면 우주개발계획과 국가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가격이 수십만원대인 개인용 컴퓨터 CPU 보드를 방사선이 강한 우주환경에서 쓸 수 있는 내방사선반도체 제품으로 개량하면 수천만원대로 부가가치가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내방사선반도체를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이런 기술은 굳이 상용화하지 않더라도 이미 구축된 기반시설과 전문인력을 잘 활용하여 자급대책을 미리 만들어두는 것만으로도 위기상황에 대한 억제 대책이 될 수 있다.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전문인력을 길러내고, 미래 신기술을 확보해서 새로운 먹거리 산업을 확보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이기 이전에 생존이 걸린 문제다. 반도체 생태계가 급변하는 다양한 위기상황을 상정하고, 대응방안을 미리 마련해야 한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