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급차 불러 '빅5 응급실' 밀고 들어간다…환자들 불안감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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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낮 12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사설구급대 한대가 도착해있다. 채혜선 기자

28일 낮 12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사설구급대 한대가 도착해있다. 채혜선 기자

28일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 ‘응급 이송’ ‘응급 출동’ ‘하트 세이버(생명을 소생시킨 사람)’ 등과 같은 문구가 적힌 사설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수시로 도착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한 이송업체 직원은 “음식을 못 삼킨다는 암 환자의 보호자가 아산병원으로 가기를 원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직원은 “암 수술 뒤 배액관이 빠진 환자 이송을 위해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달려왔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아산병원 응급실을 1시간 지켜봤더니 사설 구급차 5대가 드나들었다. 12분에 1대꼴로 사설 구급차가 아산병원 응급실을 찾은 셈이다. 사설 구급차는 119구급대와 달리 병원·지역 간 이송이 가능해 환자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원(轉院)을 위해 대기 중이던 한 업체 관계자는 “외래 진료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응급실을 통해 진료를 어떻게든 받으려는 환자들이 큰 병원 응급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지난 두 달간 (전공의 사직으로) 외래가 크게 줄었는데 교수님들이 사직한다는 소식까지 겹치며 진료를 못 받을까 봐 걱정하는 환자들이 병원 응급실로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설 구급차로 붐비는 응급실, 왜  

전공의에 이어 전국 의대 교수들마저 ‘사직’ ‘주 1회 휴진’ 의사를 밝히면서, 진료 공백을 불안해하는 일부 환자들이 응급실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응급실 수용이 일단 된다면 교수와 같은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을 수 있어서다. 의료계에서는 “사태 장기화에 따라 응급실 과밀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오는 30일), 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5월 3일) 등 전국 주요 병원 교수들은 이달 마지막 주부터 주 1회 휴진 등을 통해 진료·수술 일정을 차차 줄이기로 했다.

28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붙은 응급실 진료 안내문. '중증도 순서에 따라 진료가 시작된다'는 내용이다. 채혜선 기자

28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 붙은 응급실 진료 안내문. '중증도 순서에 따라 진료가 시작된다'는 내용이다. 채혜선 기자

서울 ‘빅5’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최근 '불안하다’며 응급실로 오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설 구급차 업체의 실장 A씨는 “요새는 1시간 이상 기다리면 들어갈 수는 있다”라며 “나중에 자리를 빼더라도 ‘빅5’ 병원 응급실을 밀고 들어가려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아산병원 응급실 앞에서 만난 한 70대 남성은 “아내의 배뇨장애로 전날 여기로 왔는데 응급실이 꽉 찼다. 병원을 옮기라는데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28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응급환자를 실은 119구급대 차량이 도착해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8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응급환자를 실은 119구급대 차량이 도착해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차 의료를 담당하는 동네 병원에서도 “외래 진료가 어려워 질 테니 응급실로 가라”고 조언하는 경우가 있다. 암 관련 환자 카페나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최근 “폐암이 의심된다고 바로 응급실로 가라 했다” “종양 수치가 높다고 대학병원에 전화했더니 응급실을 통해 외래 진료를 보라 했다”와 같은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서울 한 전문병원에서 일하는 전문의 B씨는 “대학병원의 진료가 당장 어려운데 그 사이 사고가 터지면 안 되니 ‘응급실로 바로 가라’고 환자에게 귀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의선 대한응급의학의사회 대외협력이사는 “사태가 길어지면서 응급실을 찾으려는 환자들의 예전 습관이 다시 나오고 있다”라며 “응급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정부가 설명하지만, 응급실 이용에 대한 인식개선 홍보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송명제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외래 진료가 안 되니 응급실을 찾는 환자와 진짜 응급·중증 환자가 동시에 밀리면서 응급실 상황이 정말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남은 의료진의 피로도가 큰 상황이어서, 5월이면 이탈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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