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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천덕꾸러기 ‘피그스’가 샛별된 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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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2010년 상반기, 그리스는 국제경제 위기의 진앙이었다. 과도한 공공 부채로 경제위기에 처한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과 유로존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경제위기가 포르투갈과 스페인, 아일랜드 등으로도 퍼지면서 이른바 ‘피그스’(PIGS)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구제금융을 받은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영어 국명 첫 글자를 딴 두문자어(acronym)인데, 때에 따라 이탈리아도 추가됐다. 당시 이탈리아는 자금 지원을 받지는 않았으나 위기가 심각했다.

천덕꾸러기 피그스 국가들이 이제 샛별이 됐다. 경제성장에서 EU 최대의 경제 대국 독일을 앞질러왔다. 올해 독일의 국내총생산(GDP) 성장은 0.1%로 정체된 반면 그리스 2.1%, 스페인 1.7%의 성장이 예상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EU 집행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7년간, 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이 독일보다 5%포인트 정도 더 성장했다. 집행위는 또 올해 말부터 2026년까지 4개국이 독일보다 1%포인트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네 나라는 관광산업이 발달했다. 코로나 위기 전과 위기 극복 후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또 하나 긍정 요인은 유럽경제회생기금(ERF)이다. 2021년 팬데믹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독일 주도로 조성한 8000억 유로(약 1180조원) 정도의 ERF가 있다. ERF의 최대 수혜국 이탈리아는 2000억 유로, 두 번째 큰 수혜국 스페인은 1630억 유로를 지원받는다. 두 나라 모두 2021년부터 6년간 ERF로부터 지원받을 총금액이 GDP의 10%가 넘는다.

집행위원회는 지난 3년간 ERF의 운용 성과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2022년 EU 경제성장률이 3.4%를 기록했는데, ERF가 있었기에 0.4%포인트 더 성장할 수 있었다. 또 집행위는 이 지원이 종료되는 2026년까지 6년간 EU는 이 기금 덕분에 총 1.4%포인트 추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피그스는 ‘황금 돼지’가 된 것일까. 피그스의 미래에 대한 회의적인 전망도 있다. 최근 독일의 대외방송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는 피그스 국가들이 ERF 덕분에 경제가 성장했지만,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은 이탈리아의 높은 국가 부채율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공공 총부채는 GDP의 139.8%인데 독일은 64.8%에 불과했다. ERF와 정부의 대규모 확대 재정이 이탈리아의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피그스 국가들의 비교적 높은 경제성장률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런 성장은 EU의 지원 덕이 크다. 지원이 종료된 후 견고한 경제성장을 지속할 혁신이나 성장 틀이 아직 피그스에서는 갖춰지지 않았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