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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기고

윤 대통령, 연정 수준으로 야당과 소통해 주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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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석열 대통령께 드리는 공개서한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전 민주당 대표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전 민주당 대표

총선이 집권 여당(국민의힘)의 역대급 참패로 끝났습니다. 집권 초 거대 야당의 ‘횡포’에 짓눌려 국정 운영이 힘들었지만, 총선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확보해 국정을 쇄신하고 일류국가로 도약하겠다던 부푼 꿈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통탄스러우십니까. 그러나 대통령님, 이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애초 우리 국민은 윤석열 정부가 잘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불의에 결연히 저항하며 혜성같이 등장한 윤석열은 인공지능(AI) 시대가 열리는 시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표상으로 선출됐습니다.

총선은 불통과 독선에 대한 심판
야당 만나고 언론과 소통 하면서
개헌 추진할 협의 기구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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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검찰 출신 첫 대통령은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오만과 독선 이미지로 국민을 실망시켰고, 그에 대한 분노가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여러 가지 결격 사유에도 국민은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번엔 윤석열 정권을 심판했다고 봅니다.

그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대통령께서는 총선 실패가 민생을 돌보지 못한 데서 비롯됐고, 앞으로 민생을 더 철저히 챙기겠다는 결의를 다지셨습니다. 그러나 과연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고 계신지 의아했습니다. 민주주의를 깊이 성찰하고 대통령 자신부터 개혁해야 합니다. 현대 국가는 대의제 민주주의입니다. 의회는 국정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입니다. 권력을 야당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제는 연정 수준으로 야당과 협조해야 합니다. 협상파트너인 이재명 대표와 만나셔야 합니다. 법률적 문제는 사법부에 맡기면 됩니다. 사법부도 존중해야 합니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입니다.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원인 제공자를 사면하고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 공천한 것은 사법부 모욕으로도 비춰졌습니다.

인사는 만사라고 했습니다.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인사는 통합의 바로미터(척도)입니다.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대선 후보 경선 상대였던 정적 세 사람을 국무·재무·법무 장관에 임명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자리에 검찰 선후배 인사를 앉힌 것과 대비됩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은 국정을 그르치는 최대 요인입니다. 정치학에 선진국의 조건으로 ‘제도화(Institutionalisa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의 각급 제도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의미입니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같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할 일을 대통령이 앞에서 주도해서는 일이 풀리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전국 각지를 돌면서 20여 차례 민생 토론회를 주재하며 세세한 공약을 발표하면 장관들이 할 일이 없어지고 공직자들은 관객이 됩니다.

국민과 소통을 원활히 하시라는 말씀도 드립니다. 언론과 만나셔야 합니다. 언론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창구입니다. 신년 기자회견 대신 KBS 녹화 대담을 하시고, 총선 결과에 대한 입장 표명도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서 하셨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였습니다. 대단히 조심스럽지만,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명품백 의혹’ 와중에 영부인 문제로 대통령의 독일 국빈방문과 덴마크 순방이 연기되는 사태로 비화했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공식적으로 사과하시고, 대통령 부인이 인사나 정무에 절대 개입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치제도의 개혁을 심각하게 검토할 때입니다. 이제는 극한 대결의 대통령제와 양당제를 끝내고 우리도 행정부가 의회와 함께 가는 의원내각제를, 그리고 중재와 타협을 위해 다당제 연립정부 구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권력 구조의 개편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고, 대통령이 주도하는 ‘개헌추진국민회의’ 같은 협의기구를 검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대통령에겐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가장 중요한 에너지입니다. 검찰의 권위주의적 상명하복 문화에서 벗어나 민주주의의 시대정신으로 재무장하시고, 스스로 개혁하시면 어떠한 난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건승을 빕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전 민주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