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을 우려해 출산을 포기하는 여성이 증가한 것이 한국 출산율 감소의 주요 원인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를 기르면서도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는 일·가정 양립 환경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16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조덕상 연구위원·한정민 전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선 최근 10년간 자녀 유무에 따라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 격차가 벌어지고 있었다.
30대 여성 중 ‘무자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은 2014년 33%에서 지난해 9%로 급감했지만, ‘유자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은 같은 기간 28%에서 24%로 4%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지난해 기준으로 보면 무자녀 여성이 출산을 포기할 경우 경력단절 확률을 최소 14%포인트 이상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KDI는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가 실제 출산율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경력단절이 출산율 하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더니 2013~2019년까지 25~34세 여성의 합계 출산율이 떨어진 이유 중 약 40%가 출산 여성의 고용상 불이익(차일드 페널티·child penalty) 때문으로 조사됐다. 아이를 낳으면 ‘경단녀’가 될 확률이 높아지다 보니 여성 청년들이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됐다는 해석이다.
KDI는 유독 ‘유자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 건 여성에게 과중한 육아 부담이 쏠려있는 환경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남성의 가사 참여도가 일본과 튀르키예 다음으로 낮다. 여성 대비 남성의 육아·가사노동시간 비율이 23%에 그친다.
결국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여성의 경력단절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론 육아기 부모의 시간 제약을 완화할 수 있는 재택·단축 근무 제도와 이를 지원하기 위한 보조금 정책의 확대, 남성의 영유아 교육·보육 비중 확대 등을 제시했다.
특히 현재 1~3년 정도에 불과한 육아 휴직·단축 근무 등으로는 유자녀 여성들의 경력단절 확률을 감소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부모가 육아에 시간을 더 활용할 수 있도록 재택·단축 근무 제도를 10년 이상 장기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덕상 연구위원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이 줄어들 경우, 여성이 생애 전반에 걸쳐 제공하는 노동시간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며 “이는 개인 또는 가구 입장에선 평생소득의 증가를, 거시경제 관점에선 노동 공급 증가에 따른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