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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도쿄 음반점의 임윤찬 데뷔앨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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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일본에 갈 때마다 음반점을 방문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오프라인 음반점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방대한 음반을 둘러보기에도 하루가 부족하다. 깨끗한 중고음반을 괜찮은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계산하려면 줄을 서야 한다. 얼마 전 들렀던 도쿄의 한 음반점에서 임윤찬의 국내 데뷔앨범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임윤찬 데뷔반(盤) 일본 상륙’, ‘반 클라이번 콩쿠르 최연소 우승’ ‘한국 피아노계의 지극한 보물 임윤찬 데뷔’라는 수식어와 함께 2590엔(약 2만3000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베토벤 소나타 ‘월광’과 리스트 ‘순례의 해 제2년(이탈리아)’이 수록된 이 음반은 KBS 클래식FM에서 녹음한 2020년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시리즈의 세 번째 CD다.

도쿄의 한 음반점에 진열된 임윤찬의 국내 데뷔앨범. [사진 류태형]

도쿄의 한 음반점에 진열된 임윤찬의 국내 데뷔앨범. [사진 류태형]

2013년 ‘한국의 클래식 내일의 주역들’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이 시리즈는 클래식 분야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킬 수 있는 젊은 실력파 아티스트들을 녹음과 공연으로 소개하고. ABU(아시아방송연맹), EBU(유럽방송연맹) 등을 통해 세계 방송사에 배포하려는 계획도 세웠다. 노부스 콰르텟, 트리오 제이드, 피아니스트 김태형,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이 첫 녹음을 했다. 중간에 공백이 있기도 했지만 2020년 오보이스트 함경,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비올리스트 이화윤, 그리고 임윤찬까지 17장의 CD가 세상에 나왔다.

이 시리즈의 담당자는 김경정 프로듀서다. 임윤찬이 2019년 윤이상 콩쿠르 우승 후 ‘KBS음악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사무실에서 연주를 듣다가 뭔가 심상치 않아 바로 스튜디오에 가서 어머니와 같이 온 15세 소년을 섭외했다. 어떤 곡을 녹음할지 상의할 때 임윤찬이 “꼭 베토벤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소나타 14번 ‘월광’을 정했다. 당시 사흘 동안 하루 4~5시간씩 KBS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녹음 작업에 대해 김 PD는 “윤찬 씨가 녹음할 때 가끔 물만 마셨고 그 외에는 연주만 했다”고 밝혔다. 여러 개의 테이크를 녹음했지만 한 호흡으로 녹음해 중간에 끊어서 이어붙인 ‘짜깁기’가 없었던 것도 신인답지 않은 일화다. 연주를 들어보면 유명한 3악장에서도 템포가 독특하다. 또렷하면서도 밀고 가는 움직임이 기민하고, 격렬한 부분에서도 들숨과 날숨이 제대로 교차한다. 당시 임윤찬이 “베토벤이 달빛에 대해 이렇게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게 김 PD는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임윤찬의 새로운 음반이 전 세계를 장식할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인 데카 레이블과 인터내셔널 계약을 체결한 뒤 데뷔음반인 ‘쇼팽, 에튀드’가 19일 발매된다. 존경하는 옛 거장 피아니스트들의 뿌리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으로 쇼팽 에튀드를 선택했다는 이번 레퍼토리 선정의 변도 비범하다. 그의 많은 팬이 메이저 레이블 데뷔를 축하하면서 국내 데뷔음반의 초심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