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스포츠 만화경<18>끝|명멸하는 구기스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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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90년에도 깜짝 놀랄만 한 기량으로 신데렐라처럼 떠오른 신인들과 나이·부상 탓 등으로 부진을 면치 못해 차츰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져 간 노장들간의 신·구 부침이 뚜렷했다.
둥근 공처럼 좀처럼 승패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기에 더욱 흥미 있는 구기 종목 스타들의 명암을 조명해 본다.
무명에서 일약 스타 덤에 뛰어오른 신인 선두 주자는 올해 절대다수의 팬들을 끌어 모은 프로야구의 장종훈(22·빙그레).
장은 홈런 28개를 때려내 홈런·타점왕(91점)을 휩쓸었고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을 포함, 각종 상을 휩쓰는 영광을 누렸다.
지난 86년 팀의 천덕꾸러기인 연봉 4백80만 원 짜리 연습생으로 출발, 4년만에 주전 유격수이자 간판 타자(4번)로 발돋움한 장은 프로야구 고졸 출신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또 유남규(23·동아생명)아성을 허물며 녹색 테이블에 회오리를 몰고 온 남자 탁구의 김택수(21·대우증권)도 올 한해 동안 대단한 주가를 올린 스타.
89유럽-아시아 토너먼트에서 중국의 천룽찬 등 내노라 하는 세계 강호들을 깨고 우승을 차지한 이래 뚜렷한 전과를 올리지 못했던 김은 마침내 지난 23일 폐막된 제44회 종합 선수권 대회에서 유를 무너뜨리고 정상에 올랐다.
드라이브 일변도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마침내 개안이 시작됐다는 평을 듣고 있는 김은 더 이상「2인자」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1차 대회 예선전을 마친 농구 대잔치에서는 대학 최고의 슈터 문경은(19·연세대1년)이 40%의 적중률을 웃도는 3점포 l7개를 쏘아 대며 3점슛 랭킹1위·득점2위(1백15점)에 올라 「제2의 이충희」로 각광받고 있다.
월드컵 축구 본선·북경 아시안게임·남북 통일 축구 대회 등 굵직한 국제 대회가 유난히도 많았던 축구는 정광석(성균관대) 노정윤 서정원 홍명보(이상 고려대) 황선홍(건국대) 등 대회 수만큼이나 많은 유망주들을 탄생시켰다.
한편 남자 배구에서는 이상렬(금성사)을 위시하여 마낙길(성균관대) 하종화 윤종일(이상 한양대) 등 4인 방이 영 파워로 부상했고 여자 배구에서는 단신 왼쪽 공격수 장윤희(호남정유)가 혜성처럼 등장, 주목받았다.
반면 거세게 부닥쳐 오는 신인들의 파고와 세월에 밀려 은퇴의 기로에 서게 된 대표적인 케이스가 프로야구의 최동원(32·삼성).
한국 최고의 강속구 투수로 1천 탈삼진의 대기록을 수립한바 있는 최는 올 시즌 구위가 1백25km대로 떨어지면서 패전 처리에까지 동원되는 등 수모를 겪은 끝에 가까스로 6승5패를 기록,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입장에 처했다.
또 80년대 한국 남녀 성인 농구의 최고 슈터들인 이충희(32·현대전자)와 최경희(24·삼성생명)도 올 시즌을 끝으로 대표 유니폼을 벗을 계획.
농구 대잔치 원년 멤버인 이는 통산 4천 점의 대기록을 수립했고 최 또한 3천 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으나 나이 등 체력 저하에 따른 퇴조 현상이 뚜렷해, 각각 13년과 7년의 대표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이외에도 10년이 넘도록 태극 마크를 달고 코트를 누벼 오던 장윤창(30·고려증권)과 박미희가 북경 아시안게임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 서서히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있다.
또 남자 배구의 최고 중앙 공격수였던 이종경(현대자동차서비스)도 나이(31)와 부상으로 은퇴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이 외에 새로운 기술개발 등 자신의 한계점을 높이지 못해「조로」의 불명예를 안게 된 스타 또한 적지 않았다.
86아시안게임·88올림픽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으나 외국에서 개최된 국제 대회에서는 부진을 거듭,「안방 챔피언」의 별명까지 얻게 된 유남규가 대표적인 경우.
반면 나이를 잊고 투혼을 불살라 모범이 됐던 선수는 최순호(29·럭키금성) 여자하키의 임계숙(통신공사).
최는 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등 발군의 기량을 과시, 최고 스타임을 확인했고 결혼마저 연기한 필드의 마녀 임은 북경 대회에서 득점 왕(12골)에 오르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은퇴 철회를 강요(?) 당하는 등 한국 여자 하키의 대명사로 청춘을 불사르고 있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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