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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와지마 아침시장의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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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오영환 주니가타 총영사

오영환 주니가타 총영사

새해 첫날 일본 이시카와(石川)현 노토(能登)반도를 덮친 지진이 10일로 갓 100일을 넘었다. 규모 7.6 강진으로 244명이 숨지고, 주택 7만5000여 채가 피해를 봤다(1일 현재). 화재 소식이 시시각각 전해진 와지마(輪島)시 아사이치(朝市·아침시장)는 폐허로 변했다. 상가 등 약 240채가 소실됐다. 노토반도의 관광 허브인 나나오(七尾)시 와쿠라(和倉) 온천의 22개 여관도 문을 닫았다. 지난달 초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이 기울어지고 벽면에 금이 간 곳이 더러 있었다.

일본 노토반도 강진 발생 100일
이시카와현, 창조적 부흥안 발표
‘과소지역’ 재난극복 새 모델 기대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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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의 상흔은 깊다. 아직 피난 주민이 8000명을 넘고, 단수(斷水)된 11만 가구 중 7000여 가구가 여전히 불편을 겪고 있다. 2016년 구마모토(熊本)현 지진 때 44만 가구가 단수돼 3개월여 만에 완전히 복구된 것과는 큰 차이다.

지진은 고령자 중심의 ‘과소(過疎) 지역’에 대한 대규모 자연재난의 파괴력을 보여줬다. 지난 1월 30일 기준, 신원이 공개된 사망자 129명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73%(94명)였다. 피해가 큰 스즈(珠洲)·와지마시, 아나미즈(穴水)·노토정의 4개 지자체 고령화율은 49%로, 전국 평균(29%)을 압도한다. 고령자의 대피 능력은 청장년만 못하다.

이들 지역의 인프라 노후화도 심각하다. 노토정과 와지마시의 수도관 1㎞당 손상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훨씬 웃돈다. 지진에 견디는 주택의 내진화율도 스즈시가 51%, 와지마시가 45%로 전국 평균(87%)의 절반에 그쳤다. 인구 감소로 세수가 줄고 주택 신축·개축 비율이 낮은 것과 연관이 있다. 과소지역을 안고 있는 지자체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2050년 아키타(秋田)·아오모리(靑森)를 비롯한 11개 현의 인구는 2020년 대비 30% 이상 줄어들고, 인구 1만명 미만의 기초단체가 40%를 넘는다(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그래도 지진 피해 지역은 희망을 쏘아 올리고 있다. 와지마시 아사이치의 29개 상점은 가나자와(金澤)시 가나이와(金石)항에 지난달 23일 ‘출장 시장’을 열었다. 빗속에 단골손님 등 1만3000여명이 응원의 발걸음을 했다. 일본 3대 아침시장의 명성이 되살아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듯싶다. 동서고금 가릴 것 없이 시장이 시작이다. 와쿠라 온천에선 공중목욕탕이 다시 문을 열었다. 여관 휴업이 이어지는 와중에 한 줄기 빛이 생겨났다. 나나오시와 아나미즈정을 잇는 노토 철도도 6일 전면 재개됐다. 저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시카와현은 2032년까지 9개년 계획의 ‘창조적 부흥 플랜’ 중간발표를 했다. 단순 복구가 아니라 인구감소 등에 맞춰 지역을 새로 설계하고, 노토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선으로 연결된 인프라’에 더해 ‘자립 분산형의 점으로도 꾸려가는 인프라’도 선택지의 하나로 검토하겠다고 한다. “노토의 부흥은 많은 지방이 직면한 과제의 해답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결기가 주목된다. 이시카와현의 부흥 플랜이 과소지역 재해 복구·부흥의 세계적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진 발생 직후 기시다 후미오 총리 앞으로 위로 전문을 보냈고, 3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했다. 2월에는 주일한국대사관이 주니가타총영사관, 재일 민단(民團) 이시카와 현 지방본부와 함께 나나오시 피난 주민에게 식사 제공 봉사활동을 하고 생필품을 지원했다. 올여름 방학 때는 이시카와현 고교생을 한국에 초청하고, 11월에는 이시카와현에서 문화 공연을 열 계획이다. 지진 피해 지역 주민들의 건투를 뒷받침하는 한국 측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이를 계기로 양국의 지역 교류와 협력이 활짝 피어나길 기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일 모두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를 겪고 있다. 중층적 교류와 협력 강화, 관광·수학여행 등 상호 방문 확대는 양국 지자체 모두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지구촌 시대의 주역은 지역이고, 지역 연대와 풀뿌리 교류는 국가 관계의 버팀목이기도 하다. 한·일 간 일의대수(一衣帶水)를 가로지르는 가교는 다다익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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