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 밖 기웃…만만치 않은 사상 통제|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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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한의 90년은 동구의 변화물결 등 외풍으로부터의 체제고수에 안간힘을 쏟은 한해였다.
북한당국은 세계적인 탈 이념화 경향에 대응, 인텔리 층의 사상동요를 경계하는 한편 주민들의 김 부자 충성심 고취와 사회주의체제의 고수를 위한 사상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아울러 북한은 지난해의 평양축전과 동구의 개혁사대 이후 높아져가고 있는 주민들의 생활향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의·식생활과 외화의 내부유통에서 나름대로 변화를 보였다.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에 따르면 작년부터 여성들의 옷차림이 한복이나 작업복에서 탈피, 양장으로 바뀌면서 앞가슴이 패는 등 노출이 두드러지거나 밝은 색상을 선호하는 등 북한여성들에게도 패션바람이 일고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헤어스타일도 구름·들국화 모양의 머리 등 다양해지고 화장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
이 때문에 농어촌 산간지방에서도 검정통치마에 흰 저고리 일색이던 여성들의 옷차림이 소매 없는 옷이나 무릎위로 올라가는 대담한 변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귀순자 등에 따르면 이런 분위기에 편승, 최근 평양에 살고 있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성 문란 풍조가 만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
당국의 철통같은 감시 속에서도 매춘행위가 은밀히 성행하고 있는 것은「평양식 사치풍조」의 영향에 따라 젊은 여성들이 모양을 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외화(달러)나 의복 또는 화장품 등을 받는 대가로 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
또 최근 평양 등 대도시 주민들의 생활 가운데 두드러진 변화는 일요일이면 가족과 함께 영화나 서커스를 관람하러 가거나 백화점에서 의류 등 생필품을 사는 것 등이다.
또 한달에 한두 번씩 옥류관 등에서 외식을 하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외화의 내부유통을 허용, 북한주민들 사이에 외화선호 풍조가 번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외국인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외화전용 상점을 주민들에게도 개방하는 등 외화사용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완화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북한당국은 교포유치 초기에는 교포들이 북한 내 친지들에게 주고 가는 달러를 신고해 모두 예치토록 강요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일반주민도 외화만 지니고 있으면 제한 없이 외화전용상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면서 교포들이 남기고 가는 달러에 대한 통제를 풀었다.
북한이 빈부개념 등 체제위협의 우려를 감수하면서까지 주민들에게 외화유통을 과감히 허용한 것은 외화부족을 메우기 위한 고육책으로 보여진다.
어쨌든 북한의 외화유통허용은 공급경제체제에 길들여진 주민들에게는 일종의 충격이며 외화선호와 함께 뇌물풍조가 더욱 보편화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지난 8월 북한연구와 범민족대회 참가 등을 목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연수 대구대 교수는『우리생각과는 달리 평양주민들이 동구권의 개혁을 다 알고있었다』며『평양에서는 냉차강수·사진사 등 이미 개인영리의 싹이 트고 있었다』고 전했다.
북한은 그 동안 이른바「사회주의 명절」만을 국가명절로 인정해 왔으나 88년 추석의 부활을 시작으로 88년부터 음력설·한식·단오를 전통 명절로 부활시켰다.
이는 민족간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유산을 계승·발전시키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같은 여러 가지 변화의 현상은 폐쇄적인 북한사회도 개혁·개방의 물결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이나마 변모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북한은 최근 사회주의와 김정일 후계체제의 기반이 될 노동자, 특히 새 세대인 청소년층의 혁명의식 결여 등 사상적 이완현상에 우려를 나타내는 가운데 사노청·여맹 등이 중심이 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상교양사업을 어느 때보다 강화하고 있다.
주민들의 새로운 욕구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도 이로 인해 만연될지도 모르는 정신적 해이를 경계하기 위한 조치임은 물론이다.
북한은 이처럼 사회적 욕구충족과 사상무장 강화라는 양면작전으로 주민들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김국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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