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좋아요’도 누르지 마라”…총선 막판 '공무원 중립' 경계령

중앙일보

입력

#1. 지난해 12월 21일 부산 강서구의 한 주민회관. 김형찬 강서구청장이 송년회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김)도읍이 없이는 못 살아, 나 혼자서는 못 살아. 헤어져서는 못 살아.”

현역 강서구 국민의힘 국회의원이자 4·10 총선 출마자인 김도읍 후보의 이름을 가수 패티김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 가사에 바꿔 넣었다. 공직선거법은 구청장을 비롯한 공직자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산시 선거관리위원회는 김 구청장에 대해 “당시 현역 국회의원 신분이더라도 선거 입후보 예정자로 볼 수 있다”며 선거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2. 기획재정부 공무원 김모(48)씨는 지난달 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른 동영상에 무심코 ‘좋아요’를 눌렀다. 4·10 총선에 출마한 고향 선배가 선거 유세를 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며칠 뒤 직장 동료로부터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듣고 ‘좋아요’를 취소했다. 김씨는 “의견을 직접 드러내지 않더라도 호감을 표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고 털어놨다.

중앙부처가 밀집한 정부세종청사에 선거 막판 ‘불조심’ 경계령이 떨어졌다. 후보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업적을 홍보해서도 안 된다. SNS에서 정치적 의견에 대한 의사 표시를 하는 것도 금지다. 총선에 관료 출신이 다수 출마한 데다, 대통령까지 선거 중립 위반 혐의로 고발당할 정도로 공무원의 ‘관권(官權)선거’ 논란이 극심한 상황이라서다.

연초부터 윤석열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22차례 주재한 민생토론회가 대표적이다. 야당은 지역마다 맞춤형 개발 사업을 발표하고, 공무원을 동원한 행위가 선거법 위반이라며 대통령을 경찰에 고발했다. 야당은 또 최근 금융감독원이 양문석 더불어민주당(경기 안산갑) 후보의 새마을금고 불법 대출 의혹을 신속하게 조사한 건에 대해서도 “새마을금고 검사권이 없는 금감원이 총선 전에 야당에 불리한 결과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선제 검사에 나섰다”며 관권 선거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사전투표 전날 각 부처에 ‘대통령이 선택한 길’이라는 홍보 영상을 시청하도록 권유해 논란이 일었다. 앞서 국방부도 장병 교육시간에 대통령 강연을 특별 교육하라는 공문을 전군에 내려보냈다가 시비가 일자 연기했다.

해당 사건이 관권 선거라는 근거는 불분명하다. 양문석 후보 불법 대출 의혹 사건의 경우 오히려 선거에 앞서 신속하게 사실을 규명하는 게 선거 취지에 부합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선거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논란이 불거지고, 고발로 이어지는 행태를 반복하는 것이 소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공직선거법 9조(공무원의 중립의무 등)는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국가공무원법 65조(정치 운동의 금지)는 “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는 등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각각 규정하고 있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 공무원을 동원해 치른 부정 선거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를 반영했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독일 등은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제한하지 않는다. 국제연합(UN)이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가 2015년 한국에 “공무원의 정치 활동이 과도하게 제한돼 있다”며 “공무원의 정치적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공무원노조는 지난달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무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기본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며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입법안을 제안했다. 김선화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장은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일률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방식은 헌법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공직 수행과 직접 관련해 문제가 되는 행위만 제한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