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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서 인생 2막, 광안리 소극장 열었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심문섭 대표는 고향 부산에서 소극장 어댑터시어터를 운영하며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사진 어댑터씨어터]

심문섭 대표는 고향 부산에서 소극장 어댑터시어터를 운영하며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사진 어댑터씨어터]

“죽을병에 걸려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치료하면서 소극장을 열었죠. ‘부산=공연 불모지’라는 공식을 깨고 싶습니다.”

지난 3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의 소극장 어댑터씨어터에서 만난 심문섭(50)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경성대 연극·영화과에서 희곡 쓰기와 연출을 전공한 그는 2007년께 상경했다. “부산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작품 제작·유통 자생력이 없었다”고 했다. 서울의 프로덕션에서 일하며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 ‘뽀로로와 요술램프’ 등 뮤지컬을 연출했다. 경력을 쌓은 뒤엔 필리핀에서 K팝 페스티벌 연출 작업을 했다.

하지만 2016년 손·발끝이 괴사하는 혈관 질환인 버거씨병(폐색성 혈전 혈관염)에 걸렸다. 치료를 위해 부산에 돌아와 동아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 2019년엔 뇌졸중으로 또 한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심 대표는 “죽음의 문턱에 서니 목표가 선명해졌다. 고향에서 작품을 만들고 소극장을 운영해 성공해 보자는 꿈을 꾸게 됐다”고 했다. 2017년 극단 ㈜예술은공유다를 차린 그는 ‘캐주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기획, 제작했다. 부산에서 시작해 서울 대학로 등지에서 160회가량 공연을 했다.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도 서울에 진출했다.

그의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 [사진 어댑터씨어터]

그의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 [사진 어댑터씨어터]

어댑터씨어터는 2021년 2월 개관했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심 대표 모교 앞의 10년 넘은 유명 소극장들도 문을 닫던 때였다.

그는 “앞선 작품 성공으로 마련한 ‘작은 발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건강 문제로) 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릴 시간도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어댑터씨어터란 이름은 ‘서로 다른 예술을 연결한다’는 의미로 붙였다. 광안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소극장을 낸 건 관광객 중 일부라도 끌어들여 부족한 ‘내수 관객’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오프라인 관객 유치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심 대표는 대신 매달 1회 낭독 등 온라인 공연을 기획했다. 한때 5명이던 극장 직원을 1명까지 줄이며 버텼다.

뚝심은 성과로 이어졌다. 80석 규모 어댑터씨어터는 개관 후 ‘룸메이트’ 등 온·오프라인 58편(515회) 공연으로 관객 1만9938명을 모았다. 오는 6월엔 근처에 2호관(100석)도 연다. 심 대표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방에서 만든 연극이 서울이나 해외로 진출하는 체계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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