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인생, 실험의 연속…예술·기술 경계를 허물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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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호 17면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자 슈리칭

대만계 미국 작가 슈리칭의 비디오 설치 작품 ‘UKI 바이러스 창궐’(2018). [사진 LG·구겐하임뮤지엄]

대만계 미국 작가 슈리칭의 비디오 설치 작품 ‘UKI 바이러스 창궐’(2018). [사진 LG·구겐하임뮤지엄]

지난 2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는 두 번째 ‘LG 구겐하임 어워드’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자는 대만계 미국 여성 작가 슈리칭(Shu Lea Cheang). 짧게 깎은 백발과 산뜻한 테일러드 재킷이 잘 어울리는 그는 7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이와 성별과 국적을 잘 가늠할 수 없는 시크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추구해 온 작품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슈리칭은 인터넷이 태동하던 1990년대에 이미 넷 아트(Net Art), 즉 인터넷 공간을 활용한 디지털 예술을 실험한 선구자다. 그 후에도 VR, 소프트웨어 디자인, 코딩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작품에 적극 활용해 왔다. 또한 기술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이를 활용하여 젠더와 인종 등의 정체성과 관련한 사회정치 문제를 작품으로 심각하게 다루어 왔다.

그러니 슈리칭은 기업 LG와 구겐하임 미술관의 글로벌 파트너십의 일환인 ‘LG 구겐하임 어워드’의 취지에 무척 잘 맞는 작가인 셈이다. 양 기관은 파트너십의 취지가 “예술과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대와 호흡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것이며, “사회상을 반영하는 중요한 가치를 함께 연구함으로써 예술을 구현하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상에는 트로피와 함께 10만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내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작품 소개 예정

지난 2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수상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는 슈리칭 작가. [사진 LG·구겐하임뮤지엄]

지난 2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LG 구겐하임 어워드를 수상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는 슈리칭 작가. [사진 LG·구겐하임뮤지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현대미술 수석 큐레이터 주은지, 지난해 ‘LG 구겐하임 어워드’ 초대 수상자인 인공지능 아티스트 스테파니 딘킨스 등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슈리칭의 작품은 (…)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예술적 실험을 펼치며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왔다. 특히, 인터넷 기술 초창기인 1990년대에 ‘넷 아트’ 분야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선구자로 새로운 도전을 향한 그녀의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1954년 대만에서 태어나 국립대만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학 석사를 취득한 슈리칭은 일찍부터 정보화 시대에 주변부로 밀리는 사람들 및 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 문제를 뉴미디어를 통해 제기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 초기 활동으로 1982년부터 뉴욕의 대안 미디어 단체인 ‘페이퍼 타이거 텔레비전’의 멤버로 활동하며 미디어의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는 공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슈리칭의 넷 설치 작품 ‘베이비 플레이’(2001). [사진 LG·구겐하임뮤지엄]

슈리칭의 넷 설치 작품 ‘베이비 플레이’(2001). [사진 LG·구겐하임뮤지엄]

또한 ‘뉴스 제작/역사 만들기: 천안문 광장에서의 라이브’(1990)에서 작가는 시위대와 군인들을 인터뷰해서 그것을 국영방송인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의 공식 보도와 나란히 배치해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90년대 초 보수화된 미국의 문화에 대항해 1994년에 초현실적인 가족 이야기를 통해 동성애자 권리, 환경주의, 정부 개입 문제를 다룬 장편영화 ‘프레시 킬’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 영화가 베를린 영화제와 뉴욕 휘트니비엔날레에서 상영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슈리칭의 선구적인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구겐하임 미술관이 의뢰했고 소장한 작품 ‘브랜든’(1998-1999)이다. 이 작품은 1993년 미국 네브래스카에서 젊은 트랜스젠더 남성 브랜든 티나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 성폭행과 살해를 당한 비극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인터넷의 참여적 특성을 활용해서 네티즌들이 실시간 채팅방에서 범죄와 처벌을 주제로 토론하게 하는 한편, 브랜든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고, 우리 모두가 가상 환경에서 어떻게 다양한 성 역할과 캐릭터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은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터넷 예술 운동의 분수령으로 종종 언급된다”고 구겐하임 전 큐레이터 케이틀린 존스는 말했다.

슈리칭 “작품 세계 큰 자신감 얻었다” 소감

슈리칭은 이후에도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장편영화 ‘I.K.U’(2000)는 “공상과학 포르노”라고 불리는데, 테크놀로지 시대의 신체와 성, 유동적인 성 정체성 등을 탐구한다. 그 속편으로 구상된 ‘UKI, 바이러스 창궐’(2018)은 2채널 영상작품인데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그는 또한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 대만관에서 대형 멀티미디어 설치미술 ‘3 x 3 x 6’을 선보였다. 이는 6대의 카메라가 끊임없이 모니터링 하는 3mx3m 너비 ‘감옥’을 은유하는 제목으로서, 소셜미디어와 CCTV 등 디지털 사회에서 항상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현대인을 다루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슈리칭의 작품은 구겐하임 외에도 뉴욕 현대미술관(MoMA), 뉴욕 휘트니 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는 울산시립미술관에 ‘UKI, 바이러스 창궐’이 소장되어 있다.

슈리칭은 수상 소감으로 “예술과 기술의 만남을 지원하는 ‘LG 구겐하임 어워드’는 현대미술계에 매우 큰 의미”라며 “이 명예로운 상을 받아 앞으로의 작품 세계를 펼쳐 나가는데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나오미 벡위스 구겐하임 수석 큐레이터는 “LG와 함께 슈리칭의 활동을 후원하는데 큰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5월에는 슈리칭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관객과 직접 만나 자신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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