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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재의 마켓 나우

전쟁 이겨도 민생 실패하면 선거 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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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저자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저자

국가는 종종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은 또 다른 새로운 경제 문제를 야기한다. 전쟁과 경제 여건은 정권의 명운을 좌우하고 선거 결과를 뒤바꾼다. 신출내기 빌 클린턴이 현직 대통령 조지 H W 부시(사진)를 꺾은 1992년 미국 대선이 좋은 예다.

1979년 이란에서 정변이 일어났다. 친미·친서방 노선의 팔라비 왕조에 반발한 이슬람 시아파 근본주의 세력의 종교혁명이었다.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이 학생들에게 포위되고 직원들이 400일 넘게 억류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메카 대모스크가 이란 혁명의 영향을 받은 원리주의 무장세력에 의해 2주간 점거됐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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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아랍 맹주를 자처하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란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 레이건 행정부도 은근히 이라크를 지원했다. 후세인의 오만과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의 독선이 만나 오판을 낳으면서 전쟁은 장기 소모전으로 치달았다. 이라크는 독가스까지 사용했지만 결정적 승기를 잡지 못했다.

전쟁은 8년을 끌고서야 유엔 중재로 종전에 이르렀다. 두 나라 모두 만신창이가 됐다. 양국의 인명 피해는 1백만 명이 넘었고 경제적 손실은 1조 달러에 달했다. 1990년을 전후해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권이 붕괴했다. 미국이 유일 패권국으로 등극했고 중동엔 희망과 불안이 엄습했다.

후세인은 미국이 자신을 중동지역의 패권자로 인정해 주리라 기대했지만 미국은 전쟁광 이미지인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그해 여름 이라크가 인접한 쿠웨이트를 전격적으로 침공해 점령했다. 전쟁 당시 이라크를 돕지 않은 쿠웨이트에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본질은 경제적 이해관계였다.

이라크는 전후 경제 복구를 앞당기기 위해 쿠웨이트의 유전지대를 확보하려 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친미국가를 침략한 후세인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다국적군을 편성해 압도적 전력으로 이라크를 공습했다. 전쟁은 일방적인 미국의 승리로 진행됐다. 지상군 투입 100시간 만에 끝이 났다.

CNN이 전쟁을 생중계하고 미군의 가공할만한 전력이 모습을 드러내자 미국은 환호했다. 베트남전 패배 이후 절치부심하던 미국이 자부심을 회복했다. 그러나 민생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3배 가까이 오르자 안정됐던 물가가 요동쳤다. 인플레이션이 전년 대비 6%를 넘어섰다.

경기도 침체에 빠졌다. 경제가 8년 만에 역성장했다. 연방준비제도는 금리 인하에 속도를 냈다. 기준금리를 6.5% 포인트 내렸다. 30년 만에 최저금리 3% 시대가 열렸다. 물가 상승률도 3%로 내려왔다. 그러나 집권 공화당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유권자는 여전히 높은 물가와 민생 경제 파탄을 용서하지 않았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