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인민대의원대회 권한강화 개헌안 승인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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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고르비 또 한번 정치적 승리/사실상 「전제권력자」된 셈/연방법에 저촉되는 공화국 결정 거부 가능/개혁파 완패… 집행과정서 지지여부는 미지수
25일 소련 인민대의원대회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요구한 권한강화와 부통령직 신설을 포함한 헌법수정안을 승인,고르바초프는 다시 한번 정치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고르바초프는 연방정부의 각료나 15개공화국 각료회의가 내린 결정사항이 소련 헌법이나 법률에 모순된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사실상의 전제권력자가 된 셈이다.
특히 이번 승리는 고르바초프의 최대정적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의 분명한 반대의사 표명과 셰바르드나제의 사임발표후 고조된 개혁파의 반독재투쟁 움직임 속에서 이룩되었다는 데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즉 개혁파들은 24일에 통과된 신 연방조약안에 대한 지지와 토지사유화 등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결정,25일에 이룩된 고르바초프의 권력강화와 헌법개정안 승인 등의 과정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던 큰 목소리와는 달리 명백한 정치적인 완패를 맛보게 된 셈이다.
연방 헌법개정은 전체대의원 2천2백50명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통과된다.
저조한 회의 출석률때문에 이날 헌법수정안은 단지 3백33명만 반대하면 저지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개혁파는 이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개혁파들은 반고르바초프 전선에 3백33명도 결집시키지 못한 보잘 것 없는 「정치세력」임을 드러낸 꼴이다.
물론 인민대의원대회는 그 선출과정에서 공산당·사회단체 등 보수파 단체들을 특별히 우대하고 있고 각 도시별·구역별로 대표를 선출하게 되어 있어 이날의 표결결과에서 드러난 찬성·반대의 표수가 그대로 현실정치의 힘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독립을 요구하는 발트 3국등 지방공화국 대의원들은 숫자도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투표자체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각 조항별로 실시된 투표자체에 참석하지 않은 대의원들이 반대나 기권을 한 대의원들 외에도 1백여명이나 되고 24일과 25일 인민대의원대회가 내린 결정에 대해 개혁세력들로부터 『인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 집단의 결정』이라는 혹평들이 나오는게 현실이다.
따라서 이날 고르바초프는 헌법적기구를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재권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집행될 때 투표결과처럼 압도적인 지지를 각 구성공화국에서 받을지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이와 같은 우려는 특히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이 『한 사람의 수중에 너무 과다할 정도의 충분한 권력이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에 헌법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는데에서도 알 수 있다.
사실 러시아공화국은 지난 10월 급진적인 경제개혁안인 「5백일 계획안」(샤탈린안)이 연방적 차원에서 동시에 시행될 것이란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고르바초프의 시간끌기 작전과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 결정과 상충되는 대통령령에 의해 좌절된후 토지사유화법안을 통과시키는 등 연방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나 24일 연방대의원대회가 토지사유화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결의하고 25일 각 공화국의 결정이 연방 헌법이나 대통령령과 위배된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을 고르바초프에게 부여해 지금까지 실시해온 러시아공의 개혁정책이 무효화될 위기에 봉착한 셈이다.
따라서 러시아공화국이 자신들의 결정이 무효화되는 연방의 지시와 인민대의원대회의 결정에 그대로 승복하리라는 기대는 지나친 낙관론 일뿐이다.
또한 이미 소연방의 일원임을 거부한채 독립의 열망을 불태우고 있는 발트 3국,흑해연안의 그루지야·아르메니아공화국 등도 이와 같은 결정을 순순히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소련은 헌법에 보장된 합법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의 권한강화와 연방유지를 위한 결정을 내렸으나 이의 성취는 평화적이거나 법률적인 방법만으로는 이룩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연방헌법의 개정결과와 그 실시가 현실에서 관철되려면 필연적으로 고르바초프가 새로 확보한 비상권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25일 인민대의원대회가 대통령령등 제반법률의 집행과 적용을 담당할 새로운 국가감찰기구(KGB 및 각 지방 내무군 등이 이 조직에 포함됨)의 설립을 두차례나 거부,좌절시킨 것은 이러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즉각적으로 새로운 감찰기구안을 수정해 제출키로 하고 27일 인민대의원대회에서 부통령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어 향후 소련 정국의 운용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의중은 부통령이 선출될 27일 이후에나 명확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인민대의원대회의 결정에 의해 소련 내각이 대통령에 의해 직접 관장되게 됨에 따라 리슈코프 총리의 사임을 포함한 각료직의 경질도 조만간 있게 될 전망이다.<김석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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