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탁구여왕 양영자 방황의 "은둔생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현정화를 이끌며 세계적 환상의 콤비를 이뤘던 녹색테이블의 대 스타 양영자가『당연히 제2의 인생을 화려하게 설계하고 있으리라』는 일반의 믿음과 달리 그늘진 나날을 보내고 있음이 밝혀져 탁구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현역은퇴를 한 것이 불과 지난 2월. 깨끗한 매너와 미모로 만인의 연인이 되었던 한때의 탁구여왕으로서 너무나 급전직하의 변화여서 충격을 주고 있다.
스물일곱 해 중에서 16년을 탁구와 살아온 발자취가 허무하다 할 정도로 양은 라켓을 놓고 조그마한 아파트에 파묻혀 홀로 은둔의 생활을 하고 있다.
82년 서울오픈탁구대회 3관왕, 83년 동경세계선수권 단식준우승, 84년 아시아 선수권 복식준우승, 86년 아시안게임 단체우승, 87년 뉴델리 세계선수권 복식우승, 88서울올림픽 복식금메달 등 낱낱이 거론하기도 벅찰 정도의 화려한 경력으로 탁구와 떼어놓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양은 여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고기가 물을 떠나는」시련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이리 남성국교 4년 때 탁구와 인연을 맺은 양은 은퇴할 때까지 정확히 16년, 그중 국가대표생활만 8년으로 숱한 국내외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며 영광으로 점철된 선수생활을 보냈다.
양은 73사라예보세계선수권 단체전우승의 주역으로 바닥 권이나 다름없었던 한국탁구를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선보인 이에리사의 뒤를 이어 한국탁구를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권으로 끌어올린 장본인.
선수생활을 마감한 양은 마치 예정된 과정처럼 소속팀 제일모직의 트레이너를 거쳐 코치로서 탁구와의 제2라운드 인생을 시작했었다.
양에게 견디기 힘든 시련이 다가온 것은 지난해 8월.
홀어머니 박복엽(당시 62세)씨가 간암 선고를 받은지 한달만에 세상을 떠난 것.
3남2녀로 형제들이 적지 않으나 이리여중 3년 때부터 청소년대표로 발탁되어 집을 떠난 생활을 해왔던 막내 양은 항상 어머니와 단둘의 외로운 생활이었고 어머니는 탁구와 함께 이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양 자신도 86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간염증세에 시달려 선수생활을 포기할 뻔했던 기억마저 있어 어머니의 병환으로 양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특히 자신의 간염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신앙으로부터의 힘이「어머니의 죽음」앞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다는 심한 무력감이 그를 몹시 괴롭혔다.
양은 소속팀 제일모직에 탁구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충분히 시간을 갖고, 그리고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의논하자』는 박성인 단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일단 병가원을 제출했다. 기한은 90년 12월 31일까지.
장례식이 끝난 지난 9월 이후 양은 탁구계에서 모습을 감춰버렸다.
전화번호도 바꿨고 혼자 사는 집도 옮겨버렸다.
탁구계에서는 양이 심한 우울증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느니, 비밀결혼을 했다는 등 갖가지 억측이 나돌기까지 했다.
접촉을 시도했던 몇몇 탁구인들도 양으로부터『혼자 있게 내버려둬 달라』는 대답을 듣고 소문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입장.
그러나 양은 24일 쉽지 않게 연결된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신적으로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컸다. 또 건강상으로도 약간의 문제가 있어 조용히 휴식을 취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고 밝히고『서초동에 있는「사랑의 교회」의 청년부 일을 하고 있고 주일학교도 맡고있어 전혀 무력하게 살고있는 것은 아니다』고 애써 밝게 얘기했다.
『탁구지도자를 계속할 것인가, 누구라도 만나 결혼을 할 것인가 생각중이지만 아직 아무 것도 확실해진 것이 없다』고 했다. <김인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