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조 날리고 이젠 망했다? 애플이 노리는 '6월의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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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잃은 ‘혁신의 왕’개발자회의에 쏠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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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1999년 이후 아이맥·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를 연이어 쏟아내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 군림해 왔다. 2003년 50억 달러에 불과했던 시가총액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3조 달러(약 3900조원)를 돌파했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고 했던가. 난공불락 같던 애플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주가는 하락세를 그리며 올해 들어서만 시가총액이 400조원 이상(현지시간 3월 25일 기준) 증발했다. 인공지능(AI)이란 거대한 물결에 올라타지 못한 탓이다. 시장은 애플의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애플의 위기와 저력을 따져봤다.

애플의 추락은 AI 경쟁에서 밀려난 게 결정적이다. 2011년 음성인식 AI 서비스인 ‘시리’를 내놨을 때만 해도 애플은 시장을 선도했다. 그러나 이후 아마존과 구글 같은 후발주자에 따라잡혔다. 그사이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2022년 생성형 AI 챗봇인 ‘챗지피티(GPT)’를 출시하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애플은 AI 스마트폰 사업에서도 삼성전자에 허를 찔렸다. 삼성전자가 실시간 통·번역 같은 AI 기능을 내세운 갤럭시 S24 시리즈를 내놓으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술 기업 중 애플만 AI에 침묵하고 있다”고 했다. ‘애플카’ 프로젝트를 접은 것은 ‘애플 위기설’에 기름을 부었다. 애플은 2014년부터 ‘프로젝트 타이탄’이란 이름으로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추진했다. 처음엔 사람의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레벨 5)을 꿈꿨다. 하지만 출시 계획은 계속 지연됐고, 성능도 운전자가 핸들을 잡아야 하는 ‘레벨 2+’까지 하향 조정됐다. 그러다 10년 만에 빈손으로 끝났다.

1. AI 밀리고 애플카 허송세월올해만 시총 400조원 증발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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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은 전문가는 이를 악재로 해석했다. 아이폰 이후 애플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의 정체성과 같았던 혁신 이미지도 흐릿해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혁신 기업의 왕이던 애플이 공격받고 있다”고 표현했다. “AI 없는 애플은 고성장주보다 코카콜라 같은 가치주와 비슷하다”(라덴버그탈만자산운용의 필 블랑카토 CEO)는 지적도 나온다. 유튜브 채널 ‘IT의 신’을 운영하는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시장에선 애플이 경쟁력 부재로 몰락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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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플은 지난 2월  XR(확장현실)을 구현하는 헤드셋 ‘비전 프로’를 내놓으며 주목을 끌었다. XR은 VR(가상현실)·AR(증강현실)·MR(혼합현실)을 통칭한 개념으로, 가상세계를 더욱 현실처럼 만들어 준다. 하지만 비전 프로가 워낙 고가여서 당장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가격은 256GB(기가바이트) 저장 용량 기준 3499달러(약 460만원)로, 메타의 MR 헤드셋인 ‘퀘스트3’(499달러)의 7배다.

애플 비전프로. [AFP]

애플 비전프로. [AFP]

주력 사업도 삐거덕거린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애플의 중국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1년 전 2위(19%)에서 올해 4위(15.7%)로 내려앉았다. 중국은 애플 전체 매출에서 19%를 차지하는 시장이다. 그런데 미·중 갈등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중국 정부가 공무원의 아이폰 사용을 금지한 데다, 화웨이 등 중국 스마트폰에 대한 ‘애국 소비’ 열풍이 불었다. 이게 중국 내 수요가 꺾인 시발점이 됐다. 지난해 4분기 화웨이의 중국 내 판매량은 1년 전보다 79.3% 급증한 반면, 아이폰 판매량은 10.6% 줄었다.

2. “자칫 노키아 전철 밟을 것”“주가 하락 과하다” 반론도 

유럽연합(EU)의 빅테크 규제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그동안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쓰는 이용자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앱)을 모두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해야 했다. 결제도 마찬가지다. 애플은 이 과정에서 최대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겼다. 이게 애플의 서비스 부문 주요 수입원이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하지만 이런 정책이 애플의 과점 체제를 강화했다는 비난이 커졌다. EU는 지난 7일 자사 서비스에 특혜를 주는 빅테크 기업을 제재하는 디지털시장법(DMA)을 시행했다. 결국 애플은 유럽에서 제3의 앱 마켓을 허용하는 등 앱스토어 독점 방침을 포기했다.

애플은 또 EU 집행위원회로부터 “음악 스트리밍 앱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18억 유로(약 2조7000억원)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미국 법무부 역시 애플의 반독점 행위를 조사하며 애플을 옥죄고 있다.

월가 일각에선 “애플의 시대는 끝났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워런 버핏의 투자 회사 버크셔해서웨이는 지난해 4분기에만 보유하던 애플 주식의 약 1%인 1000만 주를 팔았다. 지난해 12월 말 주가 기준으로 2조원 넘는 규모다. 공매도 인기 종목에 오르는 굴욕도 맛봤다. 공매도는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갚는 투자 기법이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최근엔 골드만삭스와 투자자문사인 에버코어ISI가 매수 추천 기업 명단에서 애플을 제외했다. 짐 크레이머 CNBC 주식 분석가는 애플 목표가를 현 주가(25일 종가 170.85달러)보다 약 6.4% 낮은 160달러로 잡았다. 하지만 한편에선 최근 애플 주가 하락은 과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아이폰 보유자 중 상당수가 구형을 쓰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몇 년 내에 강력한 갱신 주기가 발생해 애플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쉽사리 꺾이진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해 스마트폰 출하량 2억3460만 대를 기록하며 점유율 20.1%를 차지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애플이 고급폰과 중·저가폰이 모두 합산되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점유율 19.4%)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BofA는 “현재 애플 주가 하락 폭이 과다하며 여전히 225달러 수준의 목표 주가를 유지할 만하다”고 밝혔다.

3. “AI 전략, 시장기대 충족땐2025년 수퍼 사이클 가능”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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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공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은 낮은 매출 증가율을 상쇄할 만큼 매력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애플은 2012년 이후 매년 돈을 대규모로 풀어 자사주를 사들였다. 지난해 자사주 취득 및 매각 규모는 776억 달러(약 103조4000억원)다. 김세환 KB증권 연구원은 “애플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유해 현금 흐름이 좋다”며 “이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150% 수준의 높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유지하는 만큼 투자자 관점에서 애플에서 손을 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주식시장 ROE가 2014~2023년 평균 8%인 점을 보면 애플의 ROE는 독보적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애플의 AI 승패를 아직 속단하긴 이르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의 관심은 오는 6월 열리는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 쏠린다. 이 자리에서 애플 AI 전략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멜리우스 리서치의 벤 레이츠 애널리스트는 “AI 전략이 2025년 애플의 수퍼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애플이 제대로 된 AI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AI 경쟁의 패배자란 이미지가 더 굳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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