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부산신당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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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이 30일 당 의원총회장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김 의장은 “국민이 우리에게 등을 돌린 것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열린우리당은 30일 부글부글 끓었다. 현재 당내에선 신당을 만들어 국민에게 새롭게 다가가야 한다는 주장이 다수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아직 그림도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통합 신당을 '지역당(黨)'으로 규정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당이 청와대와의 결별 결정을 연기하며 정기국회에 전념키로 한 지 이틀 만이다. 대통령의 잦은 말바꾸기에 대해 의원들의 반응은 짜증과 분노, 실망을 넘어 냉소와 조롱으로까지 번졌다.

◆ "짜증 나서 말하기도 싫다"= 신학용 의원은 "중도개혁 세력이 다 힘을 합치는 게 왜 지역당인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당과 오기싸움을 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셈법이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직자는 "신당이 지역당이면 청와대는 한마디로 '부산 신당'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비례대표 A의원과 인천의 B의원은 "짜증이 나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석현 의원은 "지역을 초월해 다 뭉치자는 게 통합신당론 아닌가. (대통령의 말이) 왜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말했다.

친노 직계 모임인 의정연구센터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김혁규 의원 역시 "통합신당이 노 대통령에게 지역당 회귀라는 이미지를 준 모양이지만 우리가 지역당을 하자고 신당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 "말 바꾸기에 신물"=최재천 의원은 "대통령의 반(半) 협박성 발언을 듣다 보면 '늑대와 양치기 소년'이 생각난다. 이젠 대통령 발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고, (당과 대통령이) 완전 결별할 기반이 마련되고 있어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심경을 피력했다.

수도권 C의원은 "불과 며칠 전에 하야라도 할 것처럼 말했다가, 이젠 탈당 입장마저 바꿔 당을 지키겠다니 대통령의 변덕에 신물이 난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 비대위 위원은 "국회 본회의 도중 대통령 발언이 전해지니까 지도부가 다 한숨을 쉬었고, 많은 의원이 '허허' 웃더라. 대통령 임기가 1년 넘게 남았는데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상민 의원은 "평당원으로서의 견해일 뿐"이라며 노 대통령의 발언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서울지역 D의원은 노 대통령의 발언 의도를 "탈당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친노 그룹의 입지가 애매모호하게 되자 이런 예기치 못한 현상에 대해 기민하게 궤도를 수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부 중진 의원은 친노-반노 간 당내 갈등이 증폭될 것을 우려했다.

원혜영 사무총장은 "당도 그렇고 청와대도 그렇고 좀 신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재건 의원은 "신당의 색깔이 명확해지면 대통령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장영달 의원은 "당과 청와대가 국민에게 겸손하게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갖춰야 불협화음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지도부는 "…"=김근태 당 의장은 대통령 발언에 대한 논평을 요구받고 "(내가)맷집이 약해서…다음에 얘기하자"고 답변을 피했다. 김한길 원내대표 역시 "대통령 발언을 정확히 못 봐서 당장 말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 기다려 보자"며 반응을 자제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열린우리당이라는 이름을 지키든지, 새로운 신당을 만들든지 지역주의 극복 정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니 이 점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크게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공식 논평했다.

김정욱.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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