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과 절친의 '잘못된 만남'…바퀴벌레 속 20대女 일기장엔 [유품정리사-젊은 날의 유언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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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었는데 ‘유품’이 말을 할 때가 있다.
유품에 말을 거는 사람도 있다. 그가 가족이나 친구이기를 바라야 한다.
하지만 그야말로 ‘생전’ 본 적이 없는 낯선 이일 때도 있고 구급대원이거나 경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시신조차 아무도 찾지 않을 땐 평소엔 존재도 알지 못했던 낯선 직업인이 다가온다.

유품정리사 혹은 특수청소부. 2000명 이상의 죽음을 접하고 타인들의 유품을 수습한 이가 있다. 더중앙플러스에 장기 연재 중인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의 작가, 김새별 씨다.

그는 숱한 죽음을 접하며 그들 모두의 고독한 생의 끝에서 이 사회의 절망을 감지한다. 그 자신이 말하듯 다소의 논란을 감수하며 타인의 개인사까지 드문드문 옮기는 것은, 그야말로 모든 죽음은 ‘사회적 죽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짧은 생을 홀로 마감한 젊은이들의 죽음이 그렇다.
그의 직업적 경험에 따르면, 과거와 달리 독거 노인들의 고독사는 많이 줄었다. ‘고독사’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지역사회에서 나름의 ‘돌봄망’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외로운 죽음은 속수무책이다.

유품정리사는 다만 이렇게 바랄 뿐이다. “내가 가는 곳에 그들이 없기를 기원한다. 청년들이 갖고 있는 뜨거운 열정이 제대로 타오르길 희망한다. 청년들의 매일 매일이 ‘화양연화’가 되기를 기도한다.”

젊은 고인들의 컴퓨터를 정리하다 간혹 발견하는 ‘검색어’는 ‘아프지 않게 죽는 법’이라고 한다. 자신의 죽음이 아프지 않았다고 증언할 수 있는 자가 있을 리 없다. 일기장이 유언장이 되기도 한다. 남자친구와 절친의 잘못된 만남, 혹은 어쩌면 오해. 일기장을 눈물로 적셔가며 배신감을 적어대다 홀로 떠난 20대 여성. 하지만 그 슬픈 사연이 담긴 ‘유언장’도 죽음 뒤엔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갉아대는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유품정리사는 단언한다. 홀로 떠난 모든 죽음의 끝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아무리 고독하고 고고하게 떠났어도 오래 방치된 시신에선 지독한 오물이 흘러나온다. 그 속에 들끓는 구더기와 파리떼, 그리고 바퀴벌레가 자신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더듬는 지옥과도 같은 방, 그런 속에서 행여나 ‘아름다운 이별’이 어디 있겠느냐고.

어느 메디컬 미드의 주인공이 말하듯 “존엄성은 살아서나 지킬 수 있는 것(We can live with dignity; we can't die with it.)”이다. 아무리 좌절하고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모멸감을 느껴도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남아야 ‘존엄’을 지킬 수 있다. ‘젊은 날의 유언장’의 독자는 자기 자신뿐이어야만 하며, 살아남아 먼 훗날 스스로가 남에게 직접 들려줄 옛 이야기여야만 한다고….

유품정리사가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담긴 장면들을 모아봤다.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 ‘젊은 날의 유언장’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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