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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피’ 넣던 롯데 변했다…등산 대신 보낸 ‘오캉스’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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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롯데, 아이 낳기 좋은 기업 발돋움

롯데 연구

대한민국 쇼핑 1번지, 롯데의 변곡점을 짚어봅니다. MZ 사원 비율이 높은 ‘젊은 롯데’엔 다둥이 부모가 많습니다. 이미 7년 전 남성 육아휴직도 의무화하면서 기적의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롯데 연구’에선 더중플이 5회에 걸쳐 집중탐구한 롯데의 역사와 미래를 더 자세히 알아보실 수 있습니다.

2남 2녀를 둔 ‘다둥이 아빠’ 김태훈 롯데글로벌로지스 울산사무소 책임의 가족. 최선을 기자

2남 2녀를 둔 ‘다둥이 아빠’ 김태훈 롯데글로벌로지스 울산사무소 책임의 가족. 최선을 기자

롯데의 기업문화 혁신은 그룹 연수원인 롯데인재개발원이 있는 오산에서 시작된다. 조직에 대한 첫 이미지인 신입사원 교육이 확 달라지면서다. 롯데그룹은 2020년 하반기를 마지막으로 정기 공채를 폐지했다. 매년 1~3기수를 선발했는데 ‘91기’가 마지막이었다. 이제는 계열사별로 필요한 인원을 수시 채용하고, 인재개발원은 매 분기 입사한 직원을 모아 입문 교육을 진행한다.

과거 신입 연수가 공동체를 중시하는 롯데의 ‘빨간 피’ 주입이 목적이었다면, 이제 직원들 사이에선 ‘오캉스’(오산+호캉스)로 불린다. 선배의 호통도, 똑같이 차려입은 단체복도, 등산이나 운동장 달리기, 체조 같은 활동도 모두 사라졌다.

롯데GRS의 MZ 직원들이 ‘주니어보드’를 통해 논의하는 모습. [사진 롯데]

롯데GRS의 MZ 직원들이 ‘주니어보드’를 통해 논의하는 모습. [사진 롯데]

롯데가 2022년 1900억원을 투자해 연수원을 리뉴얼한 이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신세계, KCC 등 주요 기업의 인사·교육 담당자들이 벤치마크 차원에서 다녀갔다. 신입사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김민주(25) 롯데홈쇼핑 사원은 “시설이 좋고 통창이 예뻐서 오자마자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2015년 ‘기업문화개선위원회’를 만든 롯데는 2021년부터는 MZ직원들이 참여하는 ‘주니어보드’를 운영 중이다. 젊은 직원이 늘어나자 이들이 중시하는 가치관을 조직문화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롯데의 MZ 직원 비율은 2018년 54%에서 2022년 62%로 높아졌다. 35개사, 330명 규모인 주니어보드 구성원은 각 계열사 대표와 정기 회의를 통해 개선이 필요한 점에 대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한다. 롯데 관계자는 “보상에 민감한 MZ세대인 만큼 주니어보드 활동도 수당을 제공하고 업무 시간에 포함해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주니어보드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개선할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롯데는 특히 육아 휴직 제도가 주요 대기업 가운데 가장 잘 정착된 것으로 유명하다. 2012년 여성 자동 육아 휴직제를 도입했고, 2017년에는 남성 육아 휴직 1개월을 의무화했다. 2022년까지 누적 8000여 명의 남성 직원이 육아 휴직을 다녀왔다. 출산 후 1년 안에 남성 육아 휴직을 쓸 수 있도록 독려하고, 휴직 첫 달 통상임금의 100%를 보전해 경제적 이유로 휴직을 기피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2022년 롯데 임직원의 출생률(직원과 배우자 100명당 출생아 수)은 2.05명으로, 한국 출생률(20~60세 인구 100명당 출생아 수) 0.81명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롯데는 올해부터는 셋째를 출산한 임직원에게 카니발 승합차를 2년간 대여해준다. 그 이후엔 저렴한 가격에 구매도 가능하게 했다.

경기도 오산시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에서 직원이 소리가 울리도록 설계한 원형 강의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선을 기자

경기도 오산시 롯데인재개발원 오산캠퍼스에서 직원이 소리가 울리도록 설계한 원형 강의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최선을 기자

2남 2녀를 둔 ‘다둥이 아빠’ 김태훈(41) 롯데글로벌로지스 울산사무소 책임은 지금까지 모두 3번 육아 휴직을 했다. 2015년 첫째 성찬이땐 제도가 없었지만, 2018년 온유·2020년 사랑·2022년 은혜가 태어났을 땐 한 달씩 육아 휴직을 썼다. 그는 “한 달간 월급이 그대로니 마음 편히 휴직할 수 있었다”며 “실제로 직장 내 분위기가 바뀐 게 가장 큰 성과다. 육아 휴직을 의무화함으로써 특정인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기 힘든 구조를 만들어 놓은 거니까요”라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그는 “당장은 아니지만 다섯째도 생각하고 있는데, 남성 육아 휴직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입 교육부터 복지 제도까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수직적 문화가 남아 있다”는 견해도 있다. 롯데 한 계열사에서 이직한 30대 A씨는 “팀 단체로 회식하는 게 당연시 여겨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롯데에서 이직한 20대 여성 B씨는 “여성 임원이 탄생하면 ‘얼마나 독하길래’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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