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뺨맞고 베트남서 1조…‘국경 없는’ 롯데, 이제 먹힌다

  • 카드 발행 일시2024.02.28

지난해 9월 베트남 하노이에 문을 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연면적 35만4000㎡(약 10만7000평)의 초대형 상업복합단지다. 백화점과 마트, 호텔, 아쿠아리움, 영화관이 결합한 쇼핑몰은 하노이에서 유일하다. 입점 브랜드 중 약 40%는 베트남이나 하노이에 처음 들어온 매장이다. 소득 수준 향상에도 대규모 유통·상업 시설이 부재했던 하노이를 공략한 전략이다. 이는 호기심 많은 ‘베트남 MZ세대’의 적극적인 소비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오픈 122일 만에 누적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며 베트남 쇼핑몰 중 최단 기록을 세웠다. 하노이 최초 브랜드인 ‘러쉬’와 즉석떡볶이 브랜드 ‘두끼’ 등이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9월 베트남에 문 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젊은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 롯데백화점

지난해 9월 베트남에 문 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가 젊은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 롯데백화점

베트남에서의 경험은 롯데의 글로벌 전략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달 열린 올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회의)에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처럼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사업모델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성장 기회가 있는 국가라면 사업 진출 및 시장 확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내수에서 벗어나 글로벌 사업에 더 속도를 내라는 주문이다.

지난해 9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에서 그랜드 오픈을 맞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지난해 9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에서 그랜드 오픈을 맞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롯데쇼핑

크로스 보더 원조, 해외 진출 앞서가

롯데는 1990년대 해외 진출을 시작해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1990년대 중반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은 베트남 호찌민·태국 방콕·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을 둘러보며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구상하기도 했다. 유통·식품은 대표적인 내수 산업으로 여겨져 경쟁사들은 해외 시장 개척 움직임이 크지 않을 때였다. 롯데제과는 1994년 중국법인을 설립해 베이징에 껌·캔디·초코파이 공장을 세웠다. 베트남에서는 1996년 법인 설립 이후 1998년 롯데리아 매장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은 2007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점포를 내 국내 백화점 가운데 첫 해외 진출로 화제를 모았다.

롯데는 크로스 보더 성장사를 쓴 원조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1948년 시작해, 10년 만에 한국으로 건너와 롯데를 세웠고 67년 롯데제과로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당시 일본 기업들이 동남아시아 진출에 적극적이었던 점도 신 명예회장의 글로벌 구상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지난해 9월 베트남에 문 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전경. 사진 롯데백화점

지난해 9월 베트남에 문 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 전경. 사진 롯데백화점

“제3·제4의 롯데 만드는 게 꿈”

처음엔 중국을 중심에 두고 동남아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2017년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조치로, 롯데는 중국 대신 동남아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롯데는 중국 내 112개 대형마트와 5개 백화점 등을 철수하면서 5조원대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 전직 임원은 “2009년에 ‘비전 2018’이라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할 때만 해도 한국·일본에서 이만큼 컸으니까 이제 중국에 제3의 롯데를, 베트남 등 동남아에 제4의 롯데를 만들자는 게 우리의 꿈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