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낮 방송은 방송사 자율에 맡겨야|김우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TV의 낮 방송시대가 곧 열리게 될 모양이다. 정부는 내년 초부터 재원확충을 위해 기간방송인 KBS-1TV에 한해 낮 방송을 허가해 줄 예정으로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정부는 낮 방송의 허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배경으로 두 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스필오버」에 대한 대응이다. 일본의 위성TV가 우리 TV의 침묵시간인 한낮에도 국경을 넘어서 안방에 침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경 없는 TV시대를 맞아 홍콩·중국 등도 국내 위성을 쏘아 올릴 예정이어서 외국의 전파유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광고시간대를 늘려서 KBS의 적자운영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곧 KBS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종일방송을 실시하겠다는 발상이다.
과연 텔리비전 낮 방송은 실시되어야 할까. 한마디로「예스」다. 원칙적으로 낮 방송의 실시를 찬성한다. 현재 우리나라 TV는 오전 6시에서 10시까지 4시간 동안의 오전방송을 하고 종일「쉬다가」오후 5시반부터 6시간반 동안 저녁 방송을 하는 기형적인 편성 틀을 갖고 있다. 전파는 소중한 국가자원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절약을 빌미로 매일 7시간반씩이나「파업」을 하고 있을 노릇이 아니라 자원의 적극 활용을 위해 종일 방송체제를 갖춰야한다. TV를 끄고 있음으로 해서 얻는 에너지 절약 효과보다는 TV를 켜서 에너지 절약의 지혜와 정신을 확산시키는 쪽이 더 큰 효용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정보욕구가 보다 폭넓고 전문화돼 간다. 이러한 욕구충족을 위해서 낮 방송은 필요하다. 컴퓨터를 이용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교대근무제. 시간제 고용 등으로 9시 출근·5시 퇴근이 무너지고 있다. 그뿐 아니라 집안에 주로 머무르는 어린이·주부·노인을 위한 프로그램개발이 시급한 실정이다. 불량·불법비디오와 유선TV로부터 수용자를 보호해야하고 소외지역이나 계층을 위한「오픈 채널」, 시간할애 등도 고려돼야할 시점에 왔다. 또 경제의 촉매자로 방송의 역할이 증대되고 독립제작 사에게 판로를 열어주기 위해서도 낮 방송은 때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낮 방송이 제 몫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대로라면『노』이다. 아침뉴스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드는 것이 우리 실정이다. 전문인력도 크게 부족하고 제작여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방송시간의 대폭증가는 오락물의 재방, 저질영화의 범람, 값싼 필러(Filler·빈 시간 메우기 용 프로그램)의 집중편성, 그리고 외국 프로의 시장화를 가져오기 쉽다. 인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획기적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독립제작사 육성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때다.
국제적인 추세나 수용자의 정보욕구, 취향의 변화로 미루어 봐도 이제 종일방송은 환영받고도 남는다. 다만 그 명분이 국가기간방송의 재원확보여도 좋을까. 방송이 광고의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방송의 정책과 활동은 방송사의 이익과 편의보다는 수용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공익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정부의 방송시간 허가는 폐지돼야 한다. 신문을 몇 면 발행할 것인가를 신문사 스스로 결정하듯, 방송을 하루에 몇 시간씩이나 낼 것인가는 방송사의 자율로 결정돼야 한다. 방송순서의 편성에 대한 규제나 간섭은「방송편성의 자유는 보장된다」고 규정한 방송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외국어대교수·신문방송학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