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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느낌] 사랑? 그게 밥 먹여주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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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사랑밖엔 난 몰라'라 해도 충분히 행복한 건 드라마나 영화속 얘기다. 사랑 영화는 현실을 생략하는 걸 무슨 특권으로 아니까. 하지만 사랑이 어디 그렇게 만만한 것이던가. 우스운 예로 키스할 때 입냄새가 걱정되거나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고민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현실이 사랑에 발목을 잡고, 사랑을 망설이게 하는가.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볼 기본은 갖춘 셈이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내친 김에 영화 제목을 바꿔볼 수도 있다. '사랑할 때 걸리적거리는 것들' 혹은 '사랑할 때 발목잡는 것들'이다.

여기서 사랑을 발목잡는 것은 가족이다. 기타노 다케시가 "보는 사람만 없다면 어딘가에 내던져 버리고 싶다"던 그 가족이다. 정신병을 앓는 형, 아버지가 물린 산더미같은 빚이다. 결혼적령기를 은근히 넘긴 남녀에게 사랑의 달콤함 따위는 허락하지 않는 잔인한 현실이다.

노모(정혜선)와 정신분열증을 앓는 형(이한위)을 부양하는 동네 약사 인구(한석규). 이미 형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 보냈다. 동대문 시장에서 옷가게를 하며 명품을 카피하는 혜란(김지수). 5억원의 집안 빚을 떠안은 그녀도 비슷하다. 짝퉁 단속에 걸려 경찰서를 들락거린 것도 여러번이고, 연애도 결혼 가능성 제로인 유부남이 차라리 편하게 느껴진다.

수면제를 사러온 혜란에게 캔맥주를 권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시작된다. 물론 쉽지 않고 더딘 사랑이다. 영화는 말랑말랑한 판타지로 호객하는 대신 삶의 상처를 드러낸다. 정직한 사랑 영화이면서 가족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창동 감독('박하사탕')의 조감독 출신인 변승욱 감독은 무난한 데뷔식을 치렀다. 일상적이고 소소한 장면의 연출 호흡이 아주 좋다. 이제는 TV보다 스크린이 훨씬 익숙한 김지수의 호연도 돋보인다.

단 후반부 지나치게 관습적인 결말과 장치들이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TV드라마에서 숱하게 봐온 클리셰(상투적 장치)들이, 원 재료의 신선함을 망치는 조미료 같은 느낌이다. 끝까지 담백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영화. 후진하는 자동차나 아파트 벨소리로 관습화된 '즐거운 나의 집'이나 '언덕 위의 집'이 주제곡으로 남발된 것도 그렇다.

변 감독은 "일반 멜로와 차이점을 두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면서 "감성을 줄이고, 살아가는 정서로 채워넣은 멜로"라고 소개했다. 30일 개봉.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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