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알력 풀러 미국 다녀온 조순 전 부총리(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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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작은 불만 쌓여 도진 한미 마찰/미,「한국보호무역」에 유감표시/「게임규칙」 맞춰 정책 세우고 국익 고려 냉정한 대처 필요/부시 친서휴대 내용 몰라
조순 전 부총리가 미국 행정부·의회관계자들과 한미 통상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23일 저녁 귀국했다. 과소비억제운동,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실패 등으로 양국 통상관계에 흐르는 냉기류를 감안할 때 그의 이번 방미는 「방탄」 역할이 컸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임시절인 작년 5월 조 전 부총리는 한미통상협상에 직접 참여,미국의 우선협상대상국(PFC) 지정을 피하게 했고 그 만큼 미 행정부·의회 인사들과 두루 접할 수 있는 인물도 드물다는 점에서 그의 이번 방미 결과는 앞으로 대미 통상관계 재정립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미의 목적은. 혹시 대통령의 친서를 가져갔거나,미측으로부터 친서를 전달받은 일은 없는가.
▲말 그대로 미 행정부·의회 인사를 만나 한국경제·사회사정을 설명하고,그들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었다.
때문에 칼라 힐스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모스배커 상무장관,보스킨 미 대통령경제자문위 의장,루가 상원 의원 등 시간이 허용하는 한 많은 인사들을 접촉하려고 노력했다.
노 대통령의 친서는 휴대하지 않았으나 부시 미 대통령의 친서를 포터 대통령경제고문으로부터 전달받아왔다.
­미측 친서의 내용은.
▲직접 대통령에게 전달할 것이므로 현재로선 내용은 모른다.
­미국은 올 들어 대한 통상관계에 있어 노골적인 불만을 자주 표시해왔다. 이번 방문에서 나타난 미측의 견해는 어떤가.
▲행정부·의회,심지어 연구소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의견은 같았다.
즉 한국의 통상정책이 자유무역주의에서 이탈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강하게 표시했다. 특히 브뤼셀 UR협상이 타결에 실패한 것은 EC(유럽공동체)·일본·한국의 반대 때문이라며 자유무역에 혜택을 가장 많이 본 한국이 일본과 같이 협상에 걸림돌이 된 데 대해 유감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힐스 USTR 대표 등을 만났을 때 이 문제로 우리를 상대로 통상법 301조를 발동하겠다는 이야기는 없었는가.
▲구체적인 말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이 계속 보호무역주의적 정책을 추구하면 미 의회와 관계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내년초 의회가 한국을 상대로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로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지난 12월 중순 한미 무역실무회의에서 한국은 미측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대미 관계개선 노력을 보였다. 이에 대한 반응은. 또 우리의 대북방정책에 대한 논의는 없었는가.
▲한미 무역실무 토의가 열린 것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나,결과에 대해 그리 만족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앞으로 두고보겠다는 유보적 태도였다.
북방정책은 미측 인사들로부터 특별히 언급이 없었다.
­한미 통상관계가 왜 이처럼 불편한 쪽으로 바뀌게 됐다고 보는가.
▲아주 작은 문제,예컨대 농협만화사건 등이 쌓이고 쌓여 마치 우리의 통상정책방향이 바뀐 것 같은 인상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과소비억제운동,국내 언론의 보도 등 그 동안의 모든 일이 미측의 눈에는 부정적으로 비쳤고,문제 하나하나로는 크지는 않으나 전체가 합치면 이야기는 달라 미국 쪽에서는 이를 우리 통상정책의 후퇴라고 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향후 원만한 통상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우리가 우리 입장에서 한미 관계를 본다면 미국도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어 인식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국제화의 시각에서 「게임의 규칙」에 맞춰 통상정책을 수립·집행하며 냉정하게 국익을 고려,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나 기업 모두가 안 될 것은 안 되고 일단 약속을 하면 지키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방미의 성과는 있었다고 보는가. 또 이를 토대로 대미통상정책의 새 방향을 정부에 건의할 생각은.
▲면담인사들의 인식을 바꾸지는 못했더라도 어려운 경제·사회사정을 충분히 설명함으로써 내가 아니더라도 이같은 특사파견은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미국 쪽에서도 이런 노력만큼은 평가했다.<장성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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