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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 들키자 남편 음낭을…” 한 여자만 50년 쫓은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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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실록 편찬 과정 이미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영상 캡처

조선 시대 실록 편찬 과정 이미지. 국립조선왕조실록박물관 영상 캡처

더 헤리티지

최근 방영된 MBC 드라마 ‘연인’에선 병자호란 직후 청에 끌려가 치욕을 겪고 돌아온 주인공 길채(안은진)가 남편 구원무(지승현)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많은 시청자가 이 대목에서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가능했나’ 갸웃거렸다. 결론만 말하면 가능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아내와 이혼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 검색서비스(웹) 창에 ‘이혼’을 쳐보면 국역 415건이 검색된다(일부는 사람 이름 등 동음이의어). ‘국역’이라는 검색 결과가 드러내듯,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분량의 한문 기록유산이 국문으로 번역돼 있지 않다면 현대 한국인이 이를 참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960년대 시작된 조선왕조실록 국역이 완료된 것은 1993년. 한국고전번역원은 2012년부터 이를 다시 ‘현대어’로 옮기고 있다. 반세기 전 고어투 번역이 현대식 독해와 맞지 않게 된 데다 번역 당시 역사적 정보나 이해 부족으로 인해 오역했던 것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번역현대화 사업 참여자 중에 대표적으로 김옥경·김현재·최소영 연구원을 만나 뒷얘기를 들었다.

조선왕조실록 번역 현대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옥경(61) 고전번역실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책임연구원, 김현재(41) 조선왕조실록번역팀장, 최소영(35)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연구원(왼쪽부터). 김종호 기자

조선왕조실록 번역 현대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김옥경(61) 고전번역실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책임연구원, 김현재(41) 조선왕조실록번역팀장, 최소영(35)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연구원(왼쪽부터). 김종호 기자

당대 기록을 보면 그 시대가 읽힌다. 최 연구원은 “조선 전기에 여성의 음행(淫行)에 대해 집요하게 기록한 정황들이 있다”고 운을 뗐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이지(李枝)의 후처 김씨가 대표적이다. 이 여인은 조선 제2대 임금인 정종실록에 조화(趙禾)의 아내 김씨라며 첫 등장해 제7대 세조실록까지 약 50년간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특히 세종실록 35권(세종 9년 1월 3일 임진 두 번째 기사)에선 이지가 사망에 이른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지가 79세에 갑자기 죽은 사연인즉 함께 재를 지내러 절에 간 부인 김씨가 중과 간통해서 남편이 욕하고 때렸는데, 김씨가 되레 남편의 음낭(원문에는 腎囊[신낭])을 잡아 뜯는 통에 숨졌다고 해요. 절에 따라간 사람이 모두 김씨의 노비여서 이를 숨기는 통에 외인(外人)들은 알 수 없었다고 해놓고 사관은 마치 실제로 보고 들은 양 낱낱이 기록했지요.”

꼼꼼한 기록은 당대 사회 풍속을 전해 주는 한편 이런 사회에 대해 우려하는 사관(史官)의 시선도 간접적으로 반영한다. 실제로 조선 초기에는 고려 풍습이 그대로 남아 여자도 여러 번 결혼하곤 했지만, 이후 성리학이라는 지배이념 정착을 위해 여성의 재가·삼가를 터부시했다. 성종 때인 1477년엔 경국대전을 통해 법제화됐다. 이후 양란을 거치며 ‘치욕’을 겪은 여자와의 이혼 문제까지 실록에 고스란히 시대상으로 남아 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조 500년 동안 실록 편찬은 왕권도 미치지 못하는 사관들만의 고유 영역이었다. 심지어 실록 편찬자들도 그 전대 실록을 보지 못했다. 현대에 와서 이걸 ‘번역’하고 웹상에 공개한다는 것은 그 시대에 특정한 정치권력만 접했던 정보를 이제 누구나 읽고 접할 수 있게 됐단 의미이기도 하다.

“조선이 500년이나 지속되는 동안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또한 시대의 정치·경제·문화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록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고 예찬하는 번역가들의 생생한 뒷얘기는 더중앙플러스 ‘더 헤리티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고루하게 박제된 전통이 아니라 세대를 넘나들어 살아있는 유산(헤리티지)으로 재발견하는 노력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문화유산의 매력을 곱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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