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헤리티지: 알면 더 보인다…‘볼수록 보물’을 만나다
진귀한 문화재일수록 구구절절 얽힌 사연이 많습니다. 그 의미와 멋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포착해 세대를 잇는 유산(헤리티지)으로 재발견하고 가꿔가는 이들을 만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문화유산의 매력을 곱씹어 봅니다. 다시 보면 볼수록 보물입니다.
① 청와대 불상의 미스터리 밝힌 임영애 동국대 교수
」‘청와대 미남불’. 아는 사람은 그렇게 불렀다. 경내 관저 뒤쪽 언덕에 풍채도 위엄 있게 가부좌하고 있다. 일제 조선총독 관저가 경무대로 바뀌고 다시 청와대가 돼 여러 대통령이 거치는 동안,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켰다. 누가 언제 갖다 놓은 건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와 누적 관람객 400만 명(지난 8월 말 기준)이 찾으면서 존재감이 커졌다. “청와대에 웬 불상이냐”며 50대 관람객이 불전함을 집어던지는 소동도 벌어졌다. 묵묵부답. 불상은 말이 없다.
그 답에 천착한 이가 있다. 나아가 불상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그 재료와 형태가 1200년 전 통일신라에 대해 무얼 알려주는지 파고들었다. 단서는 수십 년전 대학원생 시절 경주 남산 답사 중에 맞닥뜨린 약수계의 목 없는 석불. “마치 쌍둥이처럼 꼭 닮은 거예요. 크기며, 조각 양식이며…. ‘이렇게 닮은 불상이 왜 서울 청와대에 있게 된 걸까’ 추적하게 됐죠.” 동국대 문화재학과 임영애(60) 교수가 청와대 미남불의 ‘뿌리’를 찾아 나선 이유다.
미남불의 정식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2018년 보물로 지정되면서 얻은 이름이다. 하지만 임 교수가 밝혀낸 바, 미남석불이라는 별명은 무려 1934년 신문기사(매일신보)에도 등장한다. 그만큼 희멀거니 잘 생겼다. 희고 단단하고 결이 곱기로 유명한 경주 남산 화강암을 9세기 신라 석공이 천년 불심을 담아 쪼고 다듬었다. 당당한 자세, 은근한 미소가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많다. 실은 이 수려한 생김새가 불상의 운명을 갈랐다. 1912년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1852~1919)가 경주를 순시했을 때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게 미남불의 천년 거처를 바꿔놓았다.
일제 총독 사로잡은 미남 석불, 천년 만에 서울로
“양쪽 귀볼이랑 코끝이 조금 깨졌지만 이 정도로 머리가 완전하게 남은 신라 석불이 거의 없어요. 경주 남산에 그렇게 불상이 많은데도 대부분 목이 떨어져 나갔고, 약수계의 쌍둥이 불상도 목이 없는 상태로 전해졌거든요. 이러니 미남불이 일본 총독 눈에 들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