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과 조깅하던 盧 한마디에…靑 미남불 110년 비밀 풀렸다

  • 카드 발행 일시2023.09.14

더 헤리티지: 알면 더 보인다…‘볼수록 보물’을 만나다

진귀한 문화재일수록 구구절절 얽힌 사연이 많습니다. 그 의미와 멋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포착해 세대를 잇는 유산(헤리티지)으로 재발견하고 가꿔가는 이들을 만납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문화유산의 매력을 곱씹어 봅니다. 다시 보면 볼수록 보물입니다.

① 청와대 불상의 미스터리 밝힌 임영애 동국대 교수

‘청와대 미남불’. 아는 사람은 그렇게 불렀다. 경내 관저 뒤쪽 언덕에 풍채도 위엄 있게 가부좌하고 있다. 일제 조선총독 관저가 경무대로 바뀌고 다시 청와대가 돼 여러 대통령이 거치는 동안,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켰다. 누가 언제 갖다 놓은 건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와 누적 관람객 400만 명(지난 8월 말 기준)이 찾으면서 존재감이 커졌다. “청와대에 웬 불상이냐”며 50대 관람객이 불전함을 집어던지는 소동도 벌어졌다. 묵묵부답. 불상은 말이 없다.

그 답에 천착한 이가 있다. 나아가 불상이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그 재료와 형태가 1200년 전 통일신라에 대해 무얼 알려주는지 파고들었다. 단서는 수십 년전 대학원생 시절 경주 남산 답사 중에 맞닥뜨린 약수계의 목 없는 석불. “마치 쌍둥이처럼 꼭 닮은 거예요. 크기며, 조각 양식이며…. ‘이렇게 닮은 불상이 왜 서울 청와대에 있게 된 걸까’ 추적하게 됐죠.” 동국대 문화재학과 임영애(60) 교수가 청와대 미남불의 ‘뿌리’를 찾아 나선 이유다.

미남불의 정식 명칭은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2018년 보물로 지정되면서 얻은 이름이다. 하지만 임 교수가 밝혀낸 바, 미남석불이라는 별명은 무려 1934년 신문기사(매일신보)에도 등장한다. 그만큼 희멀거니 잘 생겼다. 희고 단단하고 결이 곱기로 유명한 경주 남산 화강암을 9세기 신라 석공이 천년 불심을 담아 쪼고 다듬었다. 당당한 자세, 은근한 미소가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킨다는 평이 많다. 실은 이 수려한 생김새가 불상의 운명을 갈랐다. 1912년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1852~1919)가 경주를 순시했을 때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게 미남불의 천년 거처를 바꿔놓았다.

일명 '청와대 미남불'로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앞에 선 임영애(문화재학과) 동국대 교수. 임 교수는 청와대 불상이 110년 전 서울로 이전하기까지의 과정과 문화재적 가치를 경주 남산 약수계 불상과 비교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불상은 2018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명 '청와대 미남불'로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앞에 선 임영애(문화재학과) 동국대 교수. 임 교수는 청와대 불상이 110년 전 서울로 이전하기까지의 과정과 문화재적 가치를 경주 남산 약수계 불상과 비교 연구를 통해 밝혀냈다. 불상은 2018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일제 총독 사로잡은 미남 석불, 천년 만에 서울로

“양쪽 귀볼이랑 코끝이 조금 깨졌지만 이 정도로 머리가 완전하게 남은 신라 석불이 거의 없어요. 경주 남산에 그렇게 불상이 많은데도 대부분 목이 떨어져 나갔고, 약수계의 쌍둥이 불상도 목이 없는 상태로 전해졌거든요. 이러니 미남불이 일본 총독 눈에 들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