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탕한 관료 부인도 기록됐다, 조선왕조실록 ‘집요한 번역’

  • 카드 발행 일시2023.11.09

⑧ ‘500년 실록’ 현대어로 옮기는 고전번역가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연인’에는 병자호란(음력 1636년 12월∼1637년 1월) 직후 청에 끌려가 치욕을 겪고 돌아온 주인공 길채(안은진)가 남편 구원무(지승현)에게 이혼을 선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많은 시청자가 이 대목에서 ‘조선시대에도 이혼이 가능했나’ 갸웃거렸다. 결론만 말하면 가능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아내와 이혼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선조실록, 인조실록, 효종실록 등에 나온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조선왕조실록 검색서비스(웹) 창에 ‘이혼’을 쳐보면 국역 415건이 검색된다(일부는 사람 이름 등 동음이의어). 물론 여성이 아니라 남성 쪽에서 주장하는 일이 절대다수였다. ‘연인’에서 길채를 향한 사회적 손가락질을 보여주는 이런 기사(기록)도 있다.

“역적의 딸도 이혼하게 하는 예가 있는데 지금 이 오욕을 입은 부인은 역적 집안의 자손보다 더 심하지 않습니까.”
(인조실록 36권, 인조 16년 6월 13일 갑진 두 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왼쪽부터 각각 세조혜장대왕실록, 선조소경대왕실록, 영종대왕실록, 철종대왕실록. 사진 문화재청(국가기록원 소장)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 왼쪽부터 각각 세조혜장대왕실록, 선조소경대왕실록, 영종대왕실록, 철종대왕실록. 사진 문화재청(국가기록원 소장)

‘국역’이라는 검색 결과가 드러내듯, 실록 원문은 한자로 돼 있다. 달리 말하면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거대한 분량의 한문 기록유산이 국문으로 번역돼 있지 않다면 현대 한국인이 이를 참고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때 번역이란 단지 한문을 우리말 어순과 문맥으로 옮기는 게 아니다. 당대 사회 정치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뿐 아니라 중국 주요 고전과 때로 풍수나 역술 같은 특수 분야에 대한 이해를 갖춰야 제대로 옮길 수 있다. 한문만 잘한다고, 역사를 전공했다고 되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실록이란 게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완결체인데, 그 원문을 오늘날 어법에 맞게 번역함으로써 연구자나 일반 대중이 우리 역사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게끔 돕는 작업을 합니다. 여느 나라에도 관찬(官撰, 기관에서 편찬) 사료가 있지만 조선이 500년이나 지속되는 동안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 또한 시대의 정치·경제·문화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록의 가치는 무궁무진하죠.

1993년 일차적으로 완역된 조선왕조실록을 ‘현대어’로 다시 옮기고 있는 한국고전번역원 담당자들의 말이다. 올해는 실록 완역 30주년. 현대의 우리 삶이 조선왕조 기록과는 동떨어져 있음에도 계속 읽히고 재번역되는 이유가 그 기록이 가진 의미와 가치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번역현대화 사업엔 외부 촉탁 위원을 비롯해 많은 인원이 관여하고 있지만 대표적으로 김옥경(61) 고전번역실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책임연구원, 김현재(41) 조선왕조실록번역팀장, 최소영(35)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연구원을 만났다. 분량 관계상 두 편으로 나눠 소개한다.

※윗 세대가 남긴 고어투 번역과 오류를 시정하고 개선해 한층 매끄러운 우리말로 풀이하고 있는 ‘신역 조선왕조실록’은 한국고전종합DB 내 신역 조선왕조실록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 태조·정종·태종·정조실록이 신역으로 서비스되고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만난 김옥경 고전번역실 책임연구원, 김현재 조선왕조실록번역팀장, 최소영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연구원(왼쪽부터). 현재 성종실록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종호 기자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만난 김옥경 고전번역실 책임연구원, 김현재 조선왕조실록번역팀장, 최소영 조선왕조실록번역팀 연구원(왼쪽부터). 현재 성종실록 번역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종호 기자

1960년대 국역 시작…북한에 한발 늦게 완역

“일반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이라니까 그런 제목의 기록물이 있다고 오해할 수도 있어요. 실록이란 전대 왕의 업적과 시대를 총괄한 편년체 기록물이라 실제론 『태조실록』 『세종실록』 『정조실록』식으로 나뉘어 기록됐습니다. 다 묶어서 후대의 한국인들이 임의로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할 뿐이죠. 현재는 『성종실록』 새 번역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하 발언을 인용할 때 발언자를 특정해야 할 경우에만 괄호 속에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