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백인 여성 옆 달항아리…이 사진서 ‘100년 사연’ 찾았다

  • 카드 발행 일시2023.10.12

④ 조선 백자 연작 개척한 구본창 사진작가 

요즘 한국의 고미술·문화재 가운데 가장 핫한 건 달항아리다. 대체로 조선 17~18세기에 제작된 큼직한 원형 백자로 몸통 지름과 높이가 거의 1:1인 게 달덩이 같아 이렇게 불린다. 현대에도 이를 제작하는 도예가가 많고 특히 권대섭 작가의 달항아리는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소장하면서 찾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지난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높이 약 45㎝의 18세기 달항아리가 456만 달러(약 6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실물 달항아리뿐 아니라 사진, 회화, 이를 재해석한 설치미술까지 모던하면서도 한국적인 ‘헤리티지’로 각광받고 있다. 심지어 “달항아리(혹은 그림)를 집안에 두면 재복을 부른다”는 속설을 판촉 문구로 활용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그만큼 달항아리를 탐하는 세속적 욕망이 거세단 얘기다.

언제부터 이렇게 떴을까. 그 여정을 탐색하다 보면 사진작가 구본창(70)을 만나게 된다. 그가 ‘백자 연작’을 찍기 시작할 무렵은 달항아리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쓰이기 전이고(국보·보물로 지정된 백자대호 7점 명칭이 ‘달항아리’로 일괄 변경된 건 2011년), 해외에 흩어진 우리 백자의 유출 경위에 대한 본격 연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때 벌써 그는 유럽 최대 동양 미술관인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 미술관, 교토의 고려미술관, 런던의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등 세계 곳곳에 전시돼 있는 달항아리와 다양한 형태의 백자를 찾아 찍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청사기 백자실을 찾은 구본창 사진작가. 이곳엔 달항아리(보물)만을 위한 전용공간이 마련돼 있어 젊은 세대들도 '달멍'하는 장소로 즐겨 찾는다. 전민규 기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분청사기 백자실을 찾은 구본창 사진작가. 이곳엔 달항아리(보물)만을 위한 전용공간이 마련돼 있어 젊은 세대들도 '달멍'하는 장소로 즐겨 찾는다. 전민규 기자

이 백자 연작의 근원에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오래전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나이든 백인 여성이 세월의 때가 묻은 큼직한 항아리를 옆에 두고 초탈하게 앉은 모습이다. 시공간을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이 나라를 떠나 있는 게 분명한 백자의 사연이 궁금해졌다고 했다.

“분명히 중국이나 일본 것은 아니고 한국 항아리인데, 저 여인은 누구일까. 외교관 부인인가, 구한말에 가져갔나, 그나저나 우리 조선 백자가 이렇게 크고 아름답구나…. 그러면서 언젠가 백자 사진을 찍고 싶다 생각만 했는데, 15년이 지나서야 그걸 이루게 됐죠.”

그가 훗날 확인한 이 달항아리의 사연에는 여러 국내외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이 하나하나 얽히는 과정 속에 지난 100여 년의 우리 역사가 반추된다. 먼저 사진작가 구본창의 백자 탐색부터 따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