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봉사상이 내 인생 바꿔" 79년 수상자 남궁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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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백봉사상이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내년 정년을 맞는 서울 관악구청 남궁근(60.사진) 치수과장은 평생 "모범공무원"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 직장에서는 어려운 일을 자청해 맡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줘야 직성이 풀렸다. 봉사활동을 하다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장애 4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34년 공직생활 동안 상도 많이 탔다. 2000년에는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남궁 과장을 '평생 모범'으로 살게 한 상이 있었다. 1979년 제3회 청백봉사상 본상이다.

1973년 남궁씨는 서울시 건설국 5급 토목기사로 공직에 첫발을 디뎠다. 그해 9월 동대문구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우연히 집 없는 참전용사들이 육사 인근의 땅을 개간해 주택단지를 만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스물일곱 청년 남궁씨는 퇴근 뒤 장비를 챙겨 개간 현장으로 달려갔다. 설계와 측량은 물론 짐 나르기까지 6개월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77년 관악구청으로 옮긴 뒤에는 집중호우로 붕괴된 신림 제방을 복구하러 나섰다가 급류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공직생활 7년 만에 남궁씨는 청백봉사상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남궁씨는 공무원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내 기술로 민간 기업에 취직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박봉을 이기지 못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동료들 모습을 보며 정말 갈등이 심했어요."

고민 끝에 그는 공직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한데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청백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이런 뜻 깊은 상을 받고 어떻게 그만둡니까. 모두 내 운명으로 알고 다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죠. 이제 정년이 눈앞이네요."

지난 세월을 회상하는 남궁 과장은 어느새 목이 메었다.

남궁 과장은 서울지역 청백봉사상 수상자들 모임인 서울 청백회 5대 회장이다. 분기에 한 번씩 모이는 청백회는 새로 상을 받게 되는 사람에게 축전과 꽃다발을 보낸다.

내년 6월 정년이 되면 그는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청백회 회장직도 내놓는다. 아무래도 현직에 있는 분들이 연락을 하기도 쉽고, 더 활동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궁 과장에게는 꿈이 있다. 지역조직으로 흩어진 청백회의 전국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청백봉사상 수상자들은 본성적으로 남에게 베푸는 일을 좋아합니다. 전국 모임을 만들어 서로 격려해 준다면 훨씬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부가 여건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남궁 과장은 그의 운명을 갈라놓은 청백봉사상이 올해로 벌써 서른 돌을 맞는 것을 무척이나 감개무량해 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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