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계 프로복싱 헤비급 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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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각의 정글」은 극적으로 반전되는 승부에 묘미가 있다. 특히 가장 무거운 체급인 헤비급 대결에서 한방으로 결정되는 역전드라마는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올해 세계프로복싱은 2월에 펼쳐진 「동경 대 변란」으로 링계를 들끓게 했다. 헤비급 통합챔피언인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24)이 동경에서 예상을 뒤엎고 제임스 더글러스(30)에게 KO패로 무너져 충격파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헤비급은 타이슨 침몰후 더욱 흥미로운 판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 새 챔피언 더글러스는 10월에 가진 에반더 홀리필드(28)와의 타이틀매치에서 3회 KO패, 1차 방어를 넘기지 못해 타이슨을 무너뜨린 주먹이 러키펀치였음을 입증하고 말았다.
헤비급은 「복싱천재」무하마드 알리가 사라진 이후 80년대 들어 급격히 침체 속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슈거 레이 레너드·토머스 헌스·로베르토 두란·마빈 해글러 등이 라이벌 전을 펼친 웰터급 및 미들급 등이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게됐다. 그러나 이들 마저 서서히 퇴조기미를 보일 때 탱크 같은 막강 파워 타이슨이 출현해 헤비급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특히 당분간 무적으로 평가되던 타이슨의 KO패는 충격적이긴 하나 재미를 불러일으켰다.
타이슨의 침몰은 문란한 사생활로 인한 연습부족에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냉혹한 승부세계의 단면을 보여줬다. 헤비급은 홀리필드의 왕좌 등극이후 타이틀 탈환을 노리는 전 챔피언 타이슨과 「할아버지복서」조지 포먼(42)등 트로이카의 대결로 판도가 좁혀져 내년시즌에는 더욱 불꽃튀는 세기의 복싱쇼를 펼치게됐다.
이 같은 양상은 지난 70년대 초 알리·포먼, 그리고 조프레이저의 3강 체제가 20년만에 재현되는 셈이다. 홀리필드·타이슨·포먼 등 3명의 복서들은 똑같이 한차례씩 이혼한 경력을 갖는 등 링은 제패했으나 가정생활은 실패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타이슨은 성격이 포악해져 문제아로 전락, 소년원을 거쳤으며 챔피언이 된 후에도 말썽을 자주 피우곤 했다.
그러나 홀리필드·포먼은 독실한 기독교신자로 이혼한 것 외에 사생활은 모범적이어서 대조를 이룬다. 또 두 복서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프로에서도 성실한 훈련을 쌓고 있다. LA올림픽 라이트헤비급 동메달리스트인 홀리필드는 크루저급으로 프로에 데뷔, 챔피언이 된 후 헤비급으로 한 체급 올린 뒤 부족한 체력을 엄청난 훈련으로 메우며 대망의 챔피언 벨트를 차지한 집념의 복서다.
홀리필드는 평소 체중이 90㎏을 넘지 못해 더글러스와의 타이틀전을 앞두고 체력과 체중을 늘리기 위한 초인적인 특수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내년 1월22일이면 만43세가 되는 포먼은 지난 87년3월 10년만에 머리를 박박 깎고 컴백, 매직 편치를 휘두르며 24전승(23KO)을 기록하고 있어 외경감 마저 일으키게 한다. 포먼의 이 같은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은 신앙 생활을 통한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포먼-타이슨의 대결은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복서끼리의 승부여서 더욱 흥미를 모으고 있다. 미국의 ABC TV는 얼마 전 1만4천1백13명을 대상으로 타이슨과 포먼이 맞붙을 경우 누가 우세하겠느냐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놀랍게도 73%가 포먼의 우세를 예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분히 실력 이전 포먼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포먼은 우선 내년 4월19일 벌어지는 챔피언 홀리필드와의 WBA·IBF등 두개 통합 타이틀매치에서 승리해야만 타이슨과 세기의 대결을 펼칠 수 있다. 타이슨도 3월18일 홀리필드의 타이틀전을 인정하지 않는 WBC 타이틀을 놓고 캐나다 도너번 러덕과 챔피언 결정전을 갖는데 타이슨의 승리는 이변이 없는 한 확실하다.
따라서 홀리필드-포먼의 대전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포먼이 이길 경우 내년 가을께 열릴 것으로 보이는 타이슨과의 정상 다툼은 금세기 최대 복싱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이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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