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 계파간 이합집산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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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내각제 각서파동이 봉합된 후 내분으로 비쳐질까 쉬쉬하면서도 수면하에서 계파와 계보간 이합집산이 한창이다.
정기국회와 지자제 협상 등 현안문제에 가려 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각 계파는 다가오는 「내전」에 대비, 나름대로의 세 확장과 지지세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대권후보 굳히기 작전에 들어간 김영삼대표와 김대표 공략의 기수로 자처하는 민정계의 이종찬의원, 계보정치시대를 대비하고 있는 김윤환 원내총무 등이다.
여기에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이 대권을 향한 암중 모색을 하고 있고 이한동의원 등도 이춘구·오유방의원 등 민정계 중진은 물론 5공 세력과도 접촉하면서 나름의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어 민자당의 세력판도는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 전망이다.
내각제 합의각서 파문 이후 마산행까지 강행,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김대표는 당무복귀 후 기자들을 거의 만나지 않는 등 정치적 발언을 가급적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대표의 이런 모습은 외양일 뿐 실제로는 타계파 흡수작전에 은밀히 착수, 김동영·황병태·김덕룡의원 등 측근들에게 정계·재계·관계·언론계·학계인사들과 접촉토록 하고 있다.
김대표도 각서파동 이후 상도동 자택에서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대체로 밖에서 정치인·종교인등 각계 지도층인사들과 조찬을 함께 하는 등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애쓰고있다.
김대표의 당 운영방식에서 최근 들어 현저히 바뀌고 있는 것은 대표최고위원으로서의 「대표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
당무에 복귀한 김대표가 가장 먼저 확보한 것이 1주일에 한번씩의 청와대 단독정례회동이다.
김·박 최고위원을 제치고 일이 있든 없든 대통령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확고한 여권 2인자 자리를 아무도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고 민정·공화계 측은 보고 있다.
민정계의 한 중진의원은 『노 대통령이 차기대권구도에 관한 확고한 방향이 서있지 않는 한 자주 접하는 쪽의 말을 듣게 마련』이라고 우려를 표명하면서 『1차 적으로 민정계의 단합이 중요하지만 여당의 생리상 대통령의 결심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노대통령을 민정계 측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 이라며 「민정계에 의한 노대통령 관리론」을 주장했다.
민주계 일각에서 3최고위원의 「합의제」 당 운영방식을 「협의제」로 바꾸는 당헌당규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새삼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김 대표의 위상 강화 전략과 같은 맥락이다.
김대표의 핵심참모인 황병태 의원은 최근 『내년3월 지자제선거에 대비, 당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며 김대중 평민당 총재의 돌풍작전에 맞설 수 있도록 김대표에게 무게를 실어줘야 한다』며 조기 대권후보 지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황의원은 후보지명 방식으로 ▲조기 전당대회 소집 ▲노대통령이 의원 총회 등을 통해 김대표를 대권후보로 거명하는 방식 등을 예로 들었는데 또 다른 측근은 『노대통령이 명예 총재로 물러나고 김대표를 총재로, 두 최고위원을 부총재로 하거나 이름뿐인 대표최고위원을 명실상부한 최고위원의 대표로서의 당헌당규상 권한강화가 필요하다』고 속셈을 비치고 있다.
지난달 말 김대표가 연세대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상태가 오래가지 않아야 하며 가까운 시기에 예측이 가능토록 하겠다』고 말하는 등 대권후보의 조기경선 의사를 밝힌 것도 같은 배경에서 비롯됐다.
김대표의 발언은 「경선」보다는 「조기」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민정·공화계에 뚜렷한 대권후보가 없는 만큼 굳이 경선을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분석된다.
상도동 측은 이미 민정계의 경남 출신의원들 중 정순덕 사무총장, 박희태 대변인, 안병규·권해옥 의원과 김용태 예결위원장, 남재희·이자헌의원 등이 YS에게 기울었다는 말을 퍼뜨리고 있으며 김윤환 총무도 YS의 대권후보지명에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의 구설수에 휘말린 의원들은 『민정계의 결집을 막으려는 YS측의 술책』이라고 주장.
이자헌 의원은 이런 소문 때문에 지난11, 12일에 있었던 김 대표의 경기·인천지역 의원들과의 모임에 불참했으며 박 대변인도 공식적인 자리 이외에는 일체 김 대표와의 접촉을 회피하고 있고 김용태·안병규 의원도 박태준 최고위원에게 해명.
민정계 8인 중진들은 최근에도 수시로 접촉, YS대응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평민당이 요구한 비례대표제를 민주계가 받을 태세라는 것을 감지, 이를 봉쇄했으며 지자제준비특위에 누가 들어갈 것인지도 논의했을 정도로 잦은 회동을 갖고있다.
이종찬 의원은 최근 들어 부쩍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민정계의원들과 원외위원장들은 물론 평민당의 야권통합 추진파와 지방조직에까지 손을 뻗쳐 광범위한 세력규합을 시도하고 있어 앞으로의 민자당 세력판도에 주요변수로 등장할 조짐이다.
김윤환 총무는 나름의 인화력과 협상력을 무기로 민정·민주·공화계의원들과 두루 접촉하고 있으며 내년 초 서울시내에 계보사무실을 마련,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김 총무가 자신을 「킹 메이커」로 자처하면서 『누구든 대권을 꿈꾸는 사람은 나와 손 잡아야할 것』이라고 한 대목이나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차기에는 TK(대구·경북출신)가 정권을 잡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 발언은 음미할만한 대목이다.
김 총무의 발언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TK와 김대표, 또는 박최고위원, TK와 SK(서울·경기출신)의 연합 어느 쪽으로도 해석돼 차기대권에서 TK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전술로 보인다.
여기에 JP(김종필 최고위원)는 언제라도 사퇴할 수 있다는 최후의 카드를 가슴속에 간직한 채 요즘은 당사보다는 의원회관에 주로 머물면서 민정·공화계의원들을 개별접촉, 정중동의 수중모색을 계속하고 있다.
박최고위원도 청와대의 언질을 바탕으로 이종찬·박철고의원 등과 접촉,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의 대폭개각과 지자제선거가 실시되는 내년3월을 전후해 민자당내의 세력다툼은 수면 위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며 이 싸움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대세를 가름 짓는 결정적인 회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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