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극성팬 난동 막기에 로마 초비상|광란의 열풍 월드컵 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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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올해도 월드컵 축구의 열풍이 또 한차례 전세계를 휘몰아쳤다.
지난6월 축구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한달 동안 벌어진 제14회 월드컵 축구는 연인원 1백60억 명 이상이 TV를 통해 시청하고 2백50만명의 관중들이 직접 경기를 관전함으로써 단일 종목으로는 유일하게 올림픽에 버금가는 전세계적인 축제임을 실감케 했다.
주최국의 철저한 보안조치로 다행히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열성 축구 팬들의 극성(?)은 여전, 경기장은 물론개최도시는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수 시간 전부터 각국 의상을 임은 팬들과 온 몸을 울긋불긋 색칠한 관중들이 대형 국기와 악기 등을 이용, 시가지를 누비고 다니며 소란을 떨었고 흥분한 여성팬들이 경기장에서 젖가슴을 드러내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다.
서독의 콜 총리를 비롯한 참가국의 대통령·총리 등이 경기장에 나와 선수들을 직접 격려하는가하면 중국의 덩샤오핑(등소평)도 TV를 통해 밤잠을 설치며 시청함으로써 월드컵의 열기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참가국들의 국내에서도 월드컵의 성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4강 전에서 서독에 패한 영국에서는 분노한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서독제 자동차를 부수고 상점을 습격하는 등 난동으로 1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했으며 아르헨티나에서는 자국팀이 홍팀 이탈리아를 꺾고 결승에 오르자 3만명의 시민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몰려나와 광란의 축하행사를 벌이다 2명이 사망하고 16명이 부상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독일통일과 발맞춰 우승을 차지한 서독에서는 수만명의 시민들이 베를린에 모여 자정이 넘도록 폭죽을 터뜨리고 경적을 울리며 자축연을 벌였으며 올해 대회에서 8강에 진출, 최대 이변을 연출한 「검은 돌풍」카메룬은 대통령을 비롯한 2만 명의 환영인파로부터 대대적인 환호와 함께 영웅대접을 받았다.
또 루마니아에서는 격렬한 반정부시위도중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이 터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시에 데모가 중단되기도.
그러나 전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월드컵축구는 몇 가지 점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 심각한 개선론이 대두되고 있다.
첫째는 「지지 않는 축구」를 하려는 조류가 국제축구계를 지배, 경기가 거칠어지고 수비에 중점을 둠으로써 경기의 흥미가 반감되고 있다.
실제로 「압박축구」가 성행한 이번 대회에서는 52게임에 1백15골을 기록, 게임 당 평균 2·21골로 대회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FIFA(국제축구연맹)는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공격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오프사이드 반칙을 완화하고 골문을 넓히는 문제 등 규칙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둘째는 월드컵축구가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상업주의에 물들고 있다는 것.
54년부터 대회공식후원사로 지정된 아디다스사는 FIFA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개최국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쳐왔는데 94년 대회를 미국에서 개최하게된 것도 88년부터 FIFA후원 사로 지정된 코카콜라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매년 55만 달러를 FIFA에 지원하고 있는 코카콜라는 2002년 대회를 중국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막대한 시장을 겨냥한 조치라고.
셋째는 월드컵대회로 FIFA가 엄청난 부를 챙기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개최국은 적자를 면치 못해 이에 대한 시정이 요구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월드컵 대회 총56억 달러(4조원)를 투자, 관광수입 등 상당한 수익을 노렸으나 높은 물가와 혼잡 등을 이유로 예상 밖의 저조한 관광객이 옴으로써 적자를 기록한 반면 FIFA는 입장권 수입·TV중계료·광고료 등으로 1백60억원 이상을 챙겨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FIFA와 마찬가지로 스타 플레이어들에게는 월드컵대회야말로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실제로 우승을 차지한 서독 선수들은 1인당 12만5천 마르크(5천5백만원)를 보너스로 받았으며 고비마다 교체 멤버로 골을 터뜨린 헤슬러와 로이터는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이적하면서 8백80만 달러(63억원)와 4백20만 달러(32억원)를 받았다.
또 60억 리라(34억7천만원)에 불과했던 이탈리아의 스킬라치(유벤투스)는 이번 대회에서 혜성처럼 등장, 득점왕에 오르며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떠올라 몸값이 2백억 리라(1백14억원)로 치솟기도.
한편 아시아국가로는 유일하게 2회 연속 월드컵 무대에 진출한 한국은 3전패에 1득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예선에서 탈락, 세계축구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다시 실감해야만 했다. <임겸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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