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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조희대 '고법부장도 법원장' 검토…김명수 유산 깰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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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조희대 대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첫 법관 인사를 앞두고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법원장 후보군에 다시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법 부장은 법원장 원천 배제 방침’을 도입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의 유산을 재고하고 있는 것이다.

12일 복수의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은 법원장 후보 자격을 ‘법조 경력 22년 이상, 법관 재직 10년 이상인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제한한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운영 등에 관한 예규’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 규칙은 지난해 10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신설됐다.

과거 법원에선 유능하단 평가를 받는 판사들은 행정부 차관급 혜택을 받는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을 했다. 이들이 기수 순서대로 법원장 자리에 가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 개혁을 명분으로 고법 부장 승진제를 폐지하고, 예규 신설을 통해 기존 고법 부장 판사들이 법원장 보직을 맡을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그러자 고법 부장 판사들 사이에선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인사권을 남용해 형평성에 어긋나는 규칙을 만들었다”, “김명수에게 비판적인 고참 법관들을 내쫓으려는 것” 등 불만이 쏟아졌다.

조 대법원장이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현재 남아있는 고법 부장 판사를 법원장 추천 대상에 ▶전면 재포함 ▶수원·인천 등 광역단체 소재 지방법원장 후보군으로 한정해 재포함 ▶현행처럼 원천배제하는 방안 등 총 3가지다.

다만 대법원 관계자는 “일선 고법 부장 판사들이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조 대법원장이 내년 법원장 인사를 앞두고 여러 가지 방안을 보고받고 검토하는 것일 뿐, 실제 규칙 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김명수 체제에서 겨우 달성한 ‘법관 인사 이원화’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고법 부장 판사들에게 집중됐던 특혜를 줄이고자 시행된 작업인데, 다시 승진 길을 열어주면 지방법원 부장판사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조 대법원장은 김명수 대법원이 도입했던 ‘법원장 추천제’ 손질도 벼르고 있다. 법원장 추천제는 각 법원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이 소속된 법원의 법원장 후보자를 2~4명으로 압축해 천거하면 대법원장이 그중 한 명을 임명하는 제도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사법행정 민주화’를 기치로 추진해 올해 초 전국 20개 지방법원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인사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적지 않았다. “법원장들이 자신을 추천해 준 판사들 눈치를 살펴 업무 부담을 덜어주며 ‘재판지연’을 심화시키고 있다”(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이유에서였다.

조 대법원장은 폐단의 원인으로 지목된 ‘투표 절차’를 없애는 방안을 유력 검토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투표 대신 대법원 법원장 인선 자문위원회가 일선 판사들로부터 후보자 추천을 전국 단위로 받고 이 가운데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방식 ▶각 법원에서 법관회의 등을 거쳐 2~3명의 후보자 추천을 전국 단위 후보군으로 올려 임명하는 방식 ▶법원장 추천제 전면 폐지 등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판사는 “만약 추천제라는 기틀을 유지할 경우, 추천을 마구잡이로 받을 게 아니라, 연수원 23~26기 정도로 제한하는 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4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4일 오전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법원 내부에서는 “재판 지연의 원흉을 법원장 추천제로 지목하는 것은 맞지 않다”(4일 전국법관대표회의 中)는 반박도 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2018년 전국 각급 법원의 법관대표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공식회의체로 전환시킨 뒤, 주요 사법행정 정책을 추진할 때 이들의 자문을 받아왔다. 법원장 추천제 역시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을 거쳐 추진된 제도다. 만약 이들의 재의결 없이 제도를 변경할 경우 “전국법관대표회의 패싱”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장 법원장 인사 발표 시점인 내년 초까지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이번 인사에서 투표 절차를 건너뛰는 것을 검토하는 것”이라며 “제도에 대한 큰 틀의 수정은 시간을 두고 조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법원장이 내년 1월 26일 발표할 신임 법원장은 기존 2년 임기를 채운 서울행정법원·서울동부지법원·서울서부지법원·수원지법원장·인천지법원·대전지법원·전주지법원 등 총 7곳이다.

조 대법원장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 후보군 재포함 ▶법원장 추천제 개혁 방안 등은 15일 법원장 회의에서도 중점 논의될 전망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15일 법원장 회의에서 당연히 인사 관련해 많은 얘기가 오갈 것”이라며 “상당한 진통도 예상된다. 조 대법장이 이런 상황을 보고받은 뒤 최종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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