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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非爾所及(비이소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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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보다 44세나 어린 제자 자공이 말했다. “저는 남이 제게 가(加)하기를 원치 않는 일은 저도 남에게 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자 공자는 “사(賜, 자공의 이름)야! 그건 네가 아직 할 만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정진해야 함을 면려(勉勵)한 것이다. 사람은 능력에 따라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하면, 지금은 능력이 부족하여 애써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수준 따라 차근차근히 하는 게 공부의 정도이다.

爾:너 이, 所:바 소, 及:미칠 급. 네가 미칠(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25x74㎝.

爾:너 이, 所:바 소, 及:미칠 급. 네가 미칠(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25x74㎝.

요즈음 우리의 교육현장에는 ‘선행학습’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1학년 과정도 못하면서 2학년 과정을 미리 배우고, 중학교 과정도 모르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따로 과외받는다고 한다. 교육 효과가 있을 리 없다. ‘무조건 앞서가야 한다’는 부모의 욕심이 야기한 ‘애 잡는’ 유행병일 뿐이다. 1990년대만 해도 교사가 학생에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힘을 더 기르자고 말하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스승의 말을 따랐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런 지도를 하는 교사는 당장 학부모로부터 “왜 내 자식 기죽이느냐?”는 항의를 받기에 십상이란다. 비이소급(非爾所及)! 허세 빼고 분수를 알아야 한다. 학생보다 학부모 교육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