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가구업체 리바트 - 눈물의 구조조정 … 7년만에 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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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생산 라인을 점검하던 경규한 사장이 소사장들과 활짝 웃고 있다. 아래 사진은 부산 APEC 정상회의때 쓰였던 리바트의 사무용의자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리바트(당시 현대종합목재)는 부실계열사로 꼽혀 현대그룹에서 퇴출됐다. 증권거래소에서도 쫓겨났다. 92년 이래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빚은 3200억원에 달했다. 실적만 나쁜게 아니었다. 속이 곪을 대로 곪아 있었다. 매출구조가 안좋았다. 관계사인 현대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이 짓는 아파트에 가구를 납품하는 비중이 특판매출의 80%에 이르렀다. 울산의 가구공장에선 파업이 끊이지 않았다. 88년 이후 해마다 10%씩 임금을 올려줘 퇴출 무렵엔 1인당 임금이 가구업계 평균보다 30% 정도 높았다.

막다른 길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시작됐다. 우선 3000명이나 되는 직원을 정리해야 했다. 강성노조가 버티고 있던 울산 공장을 매각하고 목재사업부와 합판제조 사업을 차례로 떼어 분사시켰다. 전직원의 임금을 15~20%나 깎자 스스로 회사를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경규한(58)사장은 "당시엔 재무이사인 나조차도 불안해서 다른 회사로 옮길까 생각한적이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 몰아친 폭풍우가 어느 정도 걷히면서 전열도 재정비됐다. 임금 삭감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대한 애착이 강한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회사가 망할까봐 "현금이 아니면 납품 않겠다"던 하청업체도 있었지만, 어음을 믿고 자재를 대주는 하청업체가 있었다. 99년 8월 회사이름을 '리바트'로 바꿨다. 끝까지 남은 직원들과 하청업체에 주식을 나눠주고 '종업원 주주회사'로 새 출발했다. 기존의 공장 부지와 시설을 98년 회사를 잠시(6개월) 인수했던 고려산업개발에 넘겼다.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대신 용인 공장을 빌려쓰기로 했다. 생산시스템도 뜯어 고쳤다.1000명에 달하던 생산직 직원들을 내보내고 이중 5~6명을 소사장으로 임명했다.

각 소사장들이 독립된 생산하청업체를 차리고 용인 공장으로 입주했다. 각 소사장이 쓸 사람을 뽑았다. 생산 실적에 따라 하청 물량을 주고 성과급도 줬다. 소사장 간에 경쟁이 붙으니 1년 만에 30%나 생산성이 개선됐다. 원가 경쟁력이 생겼다. 특판 입찰을 하면 '리바트가 덤핑한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경 사장은 "우린 그러고도 이익이 나서 독립 1년 만에 흑자를 냈다"고 설명했다..

2004년부터 리바트는 제품의 생산.마케팅에 '친환경'을 강조하고 있다. 선진국 가구시장에서 이미 '새 가구 증후군'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퍼진 것을 보고 발 빠르게 벤치마킹한 것이다. 친환경 제품 생산을 위해선 우선 자재 납품업체들을 설득해야 했다. 유해성분이 덜 나오는 본드와 파티클 보드 등을 납품해달라고 부탁했다. 친환경 자재를 쓴 제품에 친환경 인증마크를 붙였다. 2006년 10월 말 현재 리바트가 따낸 친환경 인증마크은 325개에 이른다.종합가구 업체중에선 가장 많다. 자재를 잔뜩 쌓아 놓은 공장에 들어서도 코를 쏘는 냄새가 안난다는게 리바트측의 설명이다. 한때 3000명이던 직원은 380여명으로 줄었지만 디자이너는 줄이지 않았다. 시판은 물론 특판 시장의 수준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디자인으로 승부를 낼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리바트 직원 중 20%에 가까운 76명이 디자이너 등 연구개발 인력이다.

리바트는 내년 1월 베트남 공장을 완공한다. 국내 대형 건설업체들이 속속 베트남에 진출하는 것으로 보고 베트남 가구 시장을 공략하기위해서다. 이미 현지 고급아파트에 들어갈 가구를 수주했다. 파키스탄.중동 아랍에미리트 등지에도 사무용 가구를 수출하고 있는 이 회사는 장기적으로 미국.유럽의 시판 시장도 넘보고 있다. 최근 한 달에 한번 정도 해외 출장에 나서는 경 사장은 "미국 가구 시장은 크게 고급제품과 저가의 중국산제품이 양분하고 있었다"며 "좋은 품질의 가구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공급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임미진 기자<mijin@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리바트 살린 동력은

경기 용인 남사면의 리바트 가구생산 공장. 수십 명의 기술자들이 앉아서 일하는 장롱조립라인에 키 낮은 바퀴수레에 부품을 담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이 있다. 리바트의 소사장인 허윤행(49)씨다.

허씨의 일은 부품을 조립 기술자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필요한 자재를 미리미리 갖다주기 때문에 기술자들은 조립일에만 전념하게 되고 그만큼 작업시간을 줄일수 있다. 또 공장 한 켠에 이름표가 붙은 자재들이 줄어 들면 창고 담당자는 해당 자재를 제때 보충해 놓는다.

물건이 팔리면 즉각 공급한다고 해서 회사에선 이를 '수퍼마켓 시스템'이라 부른다. 허 소사장은 "공정에 맞게 자재를 공급하니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리바트의 경영시스템엔 남다른 구석이 있다. 2003년부터 시행중인 LPS(리바트 생산 시스템)에 힘입어 리바트의 생산성은 2003년과 비교해 30%이상 좋아졌다. LPS는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낭비요소를 최대한 줄이자는 생산 혁신 운동이다. 이를 위해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10여명의 소사장들은 모두 도요타의 생산혁신시스템을 보고 왔다.

이 회사의 직원은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노하우를 정리해둔다. 업무에 필요한 기초 지식과 업무의 흐름, 현재 상황 등을 자세히 기록해 언제 누가 그 업무를 맡더라도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한다.

신입 디자이너들이 별도의 오리엔테이션 기간 없이 현장에 뛰어들어 한 달 만에 가구 디자인 시안을 내 놓을 정도로 업무 적응 속도가 빠른 것도 이런 업무 매뉴얼 덕분이다. 리바트는 1998년부터 공장에서 바로 소비자에게 가구를 배달한다. 예전엔 각 대리점이 수십 평씩 되는 창고와 별도의 배달인력을 운영해야했다.부담도 크고 가구제품 구색도 제대로 갖출 수 없었다.

그러나 본사가 용인 창고에서 물건을 끄집어내 직접 소비자 집까지 가서 가구 설치까지 해주자 대리점들은 경영부담도 덜고 판매 실적이 올라갔다고 한다. 시공 직후 소비자 만족도를 체크하는 해피콜 서비스도 한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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