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朽木 不可雕也(후목 불가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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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공자보다 36세 어린 제자 재여(宰予)가 낮잠을 잤다. 공자가 호되게 꾸짖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할 수 없고, 흙이 삭은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으니 내 너를 꾸짖을 필요도 없겠구나.” (또) 말하기를 “나는 본래 다른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동을 믿곤 했었는데 이제부터는 말을 듣고서도 행동을 꼭 확인해야겠다. 너로 인해 내가 바뀌게 되었다.” 온화한 분으로 여겼던 공자가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혹독한 꾸중이다. 젊은이의 게으름은 멀쩡한 사람을 썩은 나무나 삭은 흙처럼 망가뜨리기 때문에 이토록 호되게 꾸짖은 것이다.

朽:썩을 후, 雕:새길(조각할) 조.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다. 24x76㎝.

朽:썩을 후, 雕:새길(조각할) 조.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다. 24x76㎝.

혹자는 ‘그래도 그렇지, 꾸짖음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 끝에 중간에 ‘자왈(子曰)’ 즉 ‘공자가 말하기를’로 다시 시작하는 두 번째 단락은 같은 날 재여에게 한 말이 아니라, 다른 때 다른 상황에서 한 말로 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낮잠 좀 잤다고 공자가 그토록 심하게 꾸짖었을 리 없다면서 원문이 ‘주침(晝寢:낮잠)’이 아니라, ‘화침(畵寢:화려한 침실)’일 것이라며 재여의 사치스러운 생활 태도를 꾸짖은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은 “낮잠을 자고 싶어서 잤겠어요?”라고 항변할 만큼 많이 힘들다. 공자님,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