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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 급속한 접근에 만족/노대통령 소 나들이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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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확대회담서 경협 구체화작업/모스크바대 학생과 별도 대화
○서명 뒤 샴페인 축하
▷정상회담◁
○…14일 오전 11시(한국시간 오후 5시) 크렘린궁 올드 레드룸에서 대좌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일반의 예상을 깨고 오후 1시까지 장장 2시간 동안 단독정상회담을 가졌는데 1시간30분 가량 한반도의 평화통일 문제와 아·태지역의 새 질서 구축문제에 관해,나머지 30분간은 한소 양국 관계발전 문제를 논의.
양국 정상은 단독회담이 끝난 뒤 양측 회담 참석자들을 회담장으로 불러들여 약 15분간 주로 경협문제를 협의하는 것으로 확대정상회담을 매듭.
양국 정상은 이어 공동선언 서명식을 갖고 양국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간략히 주고 받은 뒤 샴페인을 들어 공동선언 서명과 양국 관계발전을 축하.
○…노 대통령은 회담 서두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방소 초청을 해준 데 대해 사의를 표하고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했다.
이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노 대통령의 방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이번 한소정상회담은 한소 관계발전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체에 변화를 가져오는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일』이라고 평가.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의 만남이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상기시킨 뒤 『나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봄을 열고 씨앗을 뿌려 양국민 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17일부터 열리는 한소 최고인민회의 준비와 관련한 자신의 연설문 마무리문제와 소련 국내문제를 둘러싼 여러 첨예한 대립과 논쟁상황 등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6·29민주화선언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을 설명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로.
○…한반도문제 논의를 마친 두 정상은 의제를 현안인 한소간 쌍무관계로 돌려 30여 분 간 원칙적인 차원에서 협의.
두 정상은 한소 관계가 수교한 지(지난 9월30일) 불과 3개월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급속하게 증진됐다는 데 만족감을 표시하고 양국간의 상호보완적인 경제여건과 잠재력·지리적 이점 등으로 인해 협력관계가 심화·발전될 것으로 확신했다.
두 정상은 구체적인 협력증진 방안은 실무차원으로 넘겼으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이 소비재를 생산하는 경공업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군수산업을 민수산업으로 돌리겠다고 언급.
○오는 데 86년 걸린 셈
▷양국 정상 기자회견◁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마친 뒤 크렘린궁 회담장 바로 옆방에서 「대한민국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간 관계의 일반원칙에 관한 선언」에 서명하고 한소 양국 기자의 질문을 받은 뒤 샴페인을 들며 양국간 「모스크바선언」을 축하.
이어 자리에서 일어난 양국 정상은 테이블에서 기자들 앞으로 나와 카메라에 대해 포즈를 취한 뒤 한소 양국 기자 각 1명으로부터 약 10분간 질문을 받고 답변.
노 대통령은 이날 비교적 고르바초프 대통령보다는 짧게 답변했는데 회담을 끝낸 소감을 『이번 회담은 역사적인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서 『서울에서 이곳에 오는 데 10시간 남짓 걸렸으나 역사적으로 보면 86년이 걸려 오게 됐다』고 설명.
○KAL기 등 언급도
▷모스크바대 연설◁
○…14일 오후 3시30분부터 연설에 이어 학생들과의 일문일답순으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노 대통령의 모스크바대 연설은 1천4백여 석의 이 대학 2층 대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교수들의 진지하고도 열성적인 경청태도로 성공적으로 진행.
이 대학 로그노프 총장의 안내로 연설장에 들어선 노 대통령은 박수로 환영하는 청중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하고 단상 좌석 전열에 부인 김옥숙 여사,로그노프 총장 및 대학 주요인사,공로명 주소 대사와 나란히 착석.
노 대통령은 미리 준비된 원고에 의한 연설에 들어가기 전에 『강의에 앞서 감격했기에 몇 말씀 드리겠다』면서 이날 모스크바대 학생·교수들과의 첫 만남에 대한 소감을 피력.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가 추운 곳인 줄로만 알고 단단히 준비하고 왔지만 이곳의 날씨가 따뜻한 데 놀랐고 왜 그런지 처음엔 몰랐다』면서 『그것은 바로 모스크바대에서 민주주의를 향하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열기가 강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해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 도중 모두 8차례의 박수를 받았는데 『모스크바대가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수라는 데 경의를 표한다』는 대목이 본연설에서 첫 박수를 받은 대목.
노 대통령은 러시아의 대 시인 푸슈킨의 시 「기적의 순간」 중 『야 보옴뉴 추우드 노예 므그노베니에 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인용,장내는 웃음과 함께 또 한차례 박수.
그러나 노 대통령이 한소 양국이 반목·대결하던 지난날 불행과 불상사를 지적하면서 한국전쟁과 KAL기 피격사건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는 순간에는 장내가 숙연한 분위기.
이날 연설을 끝내면서도 노 대통령이 『모스크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볼쇼에 스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는 소련말로 인사하자 학생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
노 대통령은 이어 학생들과 30분간에 걸쳐 대화를 나눴는데 첫 질문에 나선 한 남학생이 『소련거주 한국인의 한국이주 전망에 대해 견해를 밝혀 달라』고 하자 노 대통령은 『장차 한소 두 나라 관계가 심화되면 외교적 절차를 통해 해결돼 나갈 것』이라고 답변.
신문학과에 재학중이라고 밝힌 이 학생은 또 『한국정부가 북한을 다녀온 한 여학생을 처벌한 법을 언제 폐지할 것인가』라는 임수경양을 겨냥한 질문을 하자 노 대통령은 『국법을 어기고 몰래 다른 나라에 갈 경우 어느 나라에서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에서라면 만약 그 학생이 그런 식으로 남한을 다녀갔을 경우 10배 내지 20배 이상 엄한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비유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박수를 쳐 납득했음을 표시.
○한국통역 한때 퇴장
▷만찬◁
○…고르바초프 대통령 내외가 14일 저녁 노 대통령 내외를 위해 모스크바대 인근 레닌 힐의 정부 연회장에서 주최한 만찬에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 등 소련정부의 주요인사들과 우리측의 공식 수행원 및 경제인 등 50여 명이 참석.
양국 정상은 고르바초프 대통령·노 대통령·김옥숙 여사·라이사 여사의 순으로 서서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특히 미국에서 이번 방소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진 노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 내외가 인사를 하자 크게 웃으며 반가워했다.
한편 이날 만찬사는 소련측 통역자 1명이 러시아어와 한국어의 통역을 함께 맡았는데 우리측 통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신연자씨는 소련측 인사가 통역을 계속하자 만찬사 도중 한때 퇴장하는 등 해프닝.
신씨는 우리측 경호원의 만류로 만찬장에 다시 들어왔는데 신씨는 노 대통령의 방소와 관련,러시아어 통역원을 구하지 못했던 외무부가 급히 찾아내 이를 맡겼던 재미교포. 그러나 신시의 통역내용은 13일 재소 교민간담회에서도 교민들 사이에 설왕설래됐다고.<모스크바=이규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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