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앞 가게주인 3명 숨은 미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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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여대 앞에서 분식점·미용실·제과점을 경영하는 세 사람이 뜻을 모아 형편이 어려운 여대생들에게 4년 동안 장학금을 지급해온 숨은 미담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주인공들은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 앞의 가미분식점 주인 최창학씨(45)와 부근 은하미용실주인 오병훈씨(45), 그린하우스제과점을 운영하는 강석종씨(45).
모두 45년생 「해방둥이」동갑내기로 오랫동안 이대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며 친형제이상의 두터운 교분을 맺어온 이들이 이대에 장학금을 내기로 뜻을 모은 것은 86년12월17일.
강씨의 제과점에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세 사람 중 최씨가 운을 뗐다.
『이제 장사도 어느 정도 기반을 잡았으니 뭔가 뜻 있는 일을 해보자.』
『학생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우리들이니 이대에 장학금을 내놓는 게 어떨까.』
세 사람의 의견은 쉽게 일치했다.
이들은 매년 한 사람 당 1백만원씩 내기로 결정하고 사흘 뒤 3백만원의 장학금을 모아 이대 총무과를 찾아가 뜻을 전했다.
혹시 『장삿속으로 돈을 내놓는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장학금의 명칭 및 운용방법·대상학생선정 등 모든 관리를 학교측에 맡겼다.
대학 측은 우선 이들의 기금을 비공식 장학금으로 받아들여 학기 당 한사람에게 25만원씩 모두 12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대 측은 1년 뒤인 87년 말 이들의 뜻을 높이 사 「가미-은하-그린하우스장학금」이란 명칭의 학교공식장학금으로 인정했다.
지금까지 이 장학금의 혜택을 받은 학생은 모두 48명.
가미분식점 주인인 최씨는 포항에서 국민학교를 마친 뒤 상경, 신문팔이·껌팔이·노동 등 안 해본 험한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하며 경제적 기반은 닦았으나 정규 상급학교 진학에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한을 간직하고있다.
『학비 마련을 위해 피를 뽑아 팔기도 하고 교통비가 없어 수 십리 씩 걸어다녀야 했던 제 젊은 시절의 어려움이 생각나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고 최씨는 말했다.
은하미용실주인 오씨 또한 20년 전에 이대 앞에 조그만 맞춤집을 차린 뒤 온갖 고생을 해 현재는 작년에 신축한 2층 미용실, 이외에 두 곳을 더 개업했다.
『학생들에게서 얻은 수익금 중 일부라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되돌리고 싶었다』고 오씨는 장학금 마련의 동기를 밝혔다.
오씨와 전남 해남 고향친구이기도 한 그린하우스제과점의 강씨 또한 고향에서 국민학교를 마친 뒤 상경, 독학으로 중·고교를 마쳤다.
오씨는 그 뒤 거의 허허벌판에 가까웠던 이대 앞에 푸른색 페인트칠을 한 조그만 제과점을 내 25년 동안 학생손님을 상대로 빵과 아이스크림 등을 팔며 기반을 닦아왔으나 끝내 향학에의 의지를 버리지 않고 건국대 행정대학원까지 마쳤다.
이들은 한결같이 『어려웠던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가장 뜻 있는 일이라 판단, 장학금지급에 흔쾌히 동의했다』며 『앞으로 기금을 더욱 늘려 더 많은 학생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에 장학금을 받은 김희란양(21·정외3)은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선정되었다 기에 가보았더니 가끔 들르던 분식점·제과점 등의 주안아저씨들이었다』며 『장학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힘든 장학금을 내주신 세분께 직접 찾아가 감사를 드렸다』고 말했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가끔씩 인사차 찾아올 때 가장 큰 삶의 보람을 느낀다』는 세 사람은 다음 학기장학금을 지급키 위해 이대를 찾아갈 20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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