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뭐라도 해야지" 'D.P.' 탈영병 조현철, 세월호 영화 연출한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수학여행 전날 서로에게 하고픈 말을 마음속에 담은채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와 하은의 이야기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수학여행 전날 서로에게 하고픈 말을 마음속에 담은채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내는 고등학생 세미와 하은의 이야기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뭐라도 바꾸려면… 뭐라도 해야지….”

2년전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1’에서 글로벌 시청자를 울린 대사다. 군대 내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탈영한 조석봉 일병의 이 탄식은, 우리 사회의 폭력과 부조리를 고발한 드라마의 주제를 오롯이 함축했다. 눈동자의 빛을 잃어가던 조 일병을 열연한 배우 조현철(37)도 화제였다. 그의 장편 감독 데뷔작 ‘너와 나’가 25일 개봉한다.
드라마 ‘D.P.’ ‘구경이’, 영화 ‘차이나타운’ 등 배우로 먼저 얼굴을 알린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출 전공 후 단편영화 ‘척추측만’, ‘뎀프시롤: 참회록’ 등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지난해 그는 조석봉 역할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조연상을 받으며 수상 소감에서 첫 장편 연출작을 스스로 ‘스포일러’ 하기도 했다.
당시 투병중인 아버지(조중래 명지대 교통공학과 명예교수, 아들의 이 수상 소감 2주일 뒤 별세했다)에게 “죽음은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라고 눈물 젖은 위로를 전한 그는 여러 사회적 죽음들을 되짚으며 ‘너와 나’를 이렇게 언급했다. “작년 한해 ‘너와 나’를 찍으면서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면서다.

영화 '너와 나'로 장편 연출 데뷔한 조현철 감독을 개봉(25일) 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너와 나'로 장편 연출 데뷔한 조현철 감독을 개봉(25일) 전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수학여행 전날 교실에서 이상한 꿈을 꾸다 깨어난 고교생 세미(박혜수)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수학여행을 못 가게 된 단짝 하은(김시은)을 찾아가는 하룻 동안의 이야기다. 수학여행 전날의 들뜬 기분, 마음속 담아뒀던 고백이 엇갈리는 꿈결 같은 하루가 햇살 가득한 화사한 화면에 담긴다.

25일 개봉 영화 '너와 나' #'D.P' 배우 조현철 감독 데뷔

"꿈에라도 와주지" 세월호 생존학생 소원서 출발

‘세월호’란 말은 영화에 한번도 나오지 않지만, ‘안산’ ‘단원고’란 단어들이 들려오는 것 만으로 평범한 일상이 가슴시리게 다가온다. 극중 반복해서 등장하는 세미의 꿈 장면이 참사 이후를 내다본 예지몽 같기도 하다.

조현철 감독은 '너와 나'에 대해 “자기 연민이나 우울함이 읽히지 않았으면 해서 캐스팅도 때묻지 않고 밝은 이미지의 배우들로 했다”고 설명했다. 박혜수(위부터)는 영화 ‘스윙키즈’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하며 눈여겨본 배우, 신인 김시은은 올해 앞서 개봉한 주연작 ‘다음 소희’ 출연 전 오디션으로 발탁했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조현철 감독은 '너와 나'에 대해 “자기 연민이나 우울함이 읽히지 않았으면 해서 캐스팅도 때묻지 않고 밝은 이미지의 배우들로 했다”고 설명했다. 박혜수(위부터)는 영화 ‘스윙키즈’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하며 눈여겨본 배우, 신인 김시은은 올해 앞서 개봉한 주연작 ‘다음 소희’ 출연 전 오디션으로 발탁했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12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조현철 감독은 “영화가 꿈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은의 꿈에 찾아온 세미’라는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2016년 개인적 사고를 겪은 뒤 죽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고, 이듬해 광화문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이 친구들을 그리워하면서 ‘꿈에라도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데서 영화를 착안했다”고 밝혔다.
“이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2016년까지만 해도 수학여행을 하루 앞둔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라고 하면 거의 모두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보다 알아채지 못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잊히지 않게 하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그에겐 ‘너와 나’가 어쩌면 그 답이었다. 주인공인 두 소녀 캐릭터에 특히 공을 들였다.

불완전한 10대 주인공 "아직 성장해야 할 인물 사라져"

그는 “10대 답게 실수도 많이 하고 예민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큰 사랑이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면서 “아직 성장해야 하고 좀 더 살아가야 하는 인물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30대 남성 창작자로서 여고생을 표현한 비결은 관찰, 또 관찰이었다. 영화과 입시학원 강의를 직접 나가고, 세월호 생존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특강을 가기도 했다. 학생들이 만든 브이로그와 주변 인물들도 관찰했다.

'너와 나'는 극중 가정형편도, 성격도 다른 두 친구가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예컨대, 세미가 떠돌이 백구의 주인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하은은 죽은 반려견을 추억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조현철 감독은 “일상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삶의 순간에서 아주 작지만 그 사람에게 확 와닿는 계기가 있는데 그게 이 영화에선 개를 찾아주는 장면”이라 했다. .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너와 나'는 극중 가정형편도, 성격도 다른 두 친구가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예컨대, 세미가 떠돌이 백구의 주인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하은은 죽은 반려견을 추억하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조현철 감독은 “일상에서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쉽지 않다”면서 “삶의 순간에서 아주 작지만 그 사람에게 확 와닿는 계기가 있는데 그게 이 영화에선 개를 찾아주는 장면”이라 했다. .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세미의 꿈속에서 드넓은 풀밭에 잠든 듯이 쓰러진 여고생의 모습은 극중 단원고 학생으로 출연한 배우 7~8명이 교차하며 촬영했다. ‘네가 나’라는 중의적 의미로도 다가오는 제목처럼 누구든 참사의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이 꿈 장면은 공룡알 화석으로 알려진 안산 시화호 근처의 우음도에서 촬영했다. 안산에서 잠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조 감독은 발뒤꿈치 각질 등의 신체적 감각을 극대화한 장면들에 대해 “익숙하지만 자세히 보면 낯설고 복잡한 것,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던 것들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D.P 조석봉 완전히 이해했다면 미쳐버렸을것"

“배우일 때는 어떻게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거리감을 갖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기술적으로 연기한다”는 그는 “감독으로서는 어떤 영화를 해야겠다기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찾고 말해야 하느냐를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야기 창작을 역할 놀이처럼 하며 자랐다는 그는 가수 매드클라운의 동생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여성운동가이자 소설가인 안일순씨, 이모는 가수 안혜경씨다. 인권변호사 조영래씨가 큰아버지다. “어릴 적부터 형과는 잘 안 놀고 시골 숲속에서 만화 장면을 지어내고 전쟁 놀이도 했다”면서 가족보다는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도 했다.
“뭔가를 이해하려 한다는 건 그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그의 목표는 "사랑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사랑을 말하는 『금강경』의 부처님 방식을 영화로 찾아가는 것"이다.
연기와 연출, 어디에 무게를 둔다기보다 상황에 맞게 찾아오는 것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그는 “최근엔 제주의 숲과 4‧3사건을 연결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수학여행 전날 고교생 세미(왼쪽부터, 박혜수)가 수학여행을 갈 수 없게 된 친구 하은(김시은)과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조현철 감독의 장편 데뷔작 '너와 나'는 수학여행 전날 고교생 세미(왼쪽부터, 박혜수)가 수학여행을 갈 수 없게 된 친구 하은(김시은)과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사진 필름영, 그린나래미디어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